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중인 A(24)씨는 신입생 때부터 영어 학원비 마련을 위해 대형마트에서 판촉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시급은 1만원 꼴로 커피숍 편의점보다 2배 가량 높고 과외보다도 오히려 쏠쏠했다. 시급이 높은 만큼 일은 고됐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 심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 '호객행위'를 하다 보니 노골적으로 다리만 쳐다보거나 치근덕대는 남성손님들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반말을 쓰며 무시하는 경우도 다반사. A씨는 "가족과 쇼핑하러 온 동창이라도 우연히 만나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어 서럽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 목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씁쓸해 했다.
등록금 벌이에 나선 대학생들의 방학 아르바이트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과외나 학원강사 같은 대학생다운 아르바이트는 취업난만큼 경쟁이 치열해 구하기가 쉽지 않고 커피숍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낮아 용돈벌이에 그치기 때문. 수백 만원에 달하는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빚을 갚기 위해 대학생들은 소위 '3D 업종'도 돈만 많이 준다면 마다하지 않고 뛰어든다. 대학생 김모(22)씨는 한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밤을 꼴딱 새면서 일한다. 김씨는 "낮에 일하는 공장 아르바이트도 많았지만 1, 2만원 더 받을 수 있는 밤 근무를 택했다"고 말했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지방출장'도 선호 알바다. 대학생 한모(27ㆍ서울 H대 영문학 4)씨는 경기 연천의 장미 재배 비닐하우스 공사 현장에서 모종 레일 설치작업을 했다. 한씨는 "숙식까지 제공되고 외진 곳이라 돈 쓸 일이 없다 보니 열흘 일하고 100만원을 금세 모았다"고 말했다.
반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는 욕심이 앞서 범죄의 나락에 빠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8일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일당 12만원 유혹에 넘어가 보이스피싱 피해금 인출책으로 활동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대학생 이모(26)씨 등 7명을 불구속입건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평범한 대학생들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는 것을 알고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어렵자 그만두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고위험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타개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는 다양한 경험 축적의 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며 "정부가 현실적인 등록금 인하 정책을 하루 빨리 내놔 방학 때라도 아르바이트가 아닌 학업 현장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손안나 인턴기자(국민대 중어중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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