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어오른 활시위와 함께 눈동자도 부피를 키운다. 활이 사람이 된 듯, 사람이 활이 된 듯 서로 한 몸이다. 주인공 남이(박해일)의 왜소한 체격과 낭창낭창한 활의 유연성이 힘을 모으며 화살을 힘껏 밀어낸다. 의외의 폭발적인 속도로 화살은 목표물에 꽂힌다. 영화 '최종병기 활'은 그렇게 전통의 무기 활과 배우 박해일이 지닌 의외성의 매력과 활력을 보여준다.
박해일이 액션영화 주연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수 어린 눈동자와 희멀건 얼굴, 소년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체구로 웬 액션? 반항과 불량끼 가득한 역발상의 역할이라면 몰라도.
3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난 박해일도 "솔직히 잘 안 땡기죠?"라고 되물었다. "주변에서 '갈 때까지 갔구나' '네가 정말 결정했냐?' '돈은 많이 준다더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최종병기 활'을 놓고 박해일에게 쏟아진 숱한 의구심은 무시해도 좋을 듯하다. 그는 이 작품을 도약대 삼아 배우로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역적의 자식인 남이의 울분과 체념은 박해일의 눈빛을 통해 체현되고, 부드러움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활의 이미지는 박해일의 몸에 얹혀 확장된다.
모든 게 생경했다. "수염 붙이고, 상투 틀고 겹겹이 한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스스로가 봐도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제주도 가서 2만원 주고 타본 게 고작인" 말 위에서 삭풍을 뚫으며 겨울을 났다. 이젠 죽은 말이 된 만주어도 기초부터 배워 익혔다. 역시나 압권은 활이었다. 처음 활을 잡는 순간 "와우" 감탄사가 나왔다고. "3개월 동안 활을 배우고 쏘면서 활의 매력에 빠졌다"고 박해일은 말했다.
"처음 시나리오는 병자호란의 정치적 배경이 많이 다뤄졌어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TV드라마에서 많이 나왔으니 (김한민) 감독님이 좀 달리 해보자 했고 활이 영화의 중심에 오게 됐어요. 몇 남지 않은 우리 전통의 것 중 하나인 활을 오락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면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죠."
박해일은 "예전부터 저격수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영화가 그런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줬다"고 말했다. "정적이면서 인물이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원했다는 그에게 남이는 제격으로 보였다.
생산력으로만 따지면 요즘 충무로에서 그를 따라잡을 주연급 배우가 있을까. '이끼' '심장이 뛴다' '짐승의 끝' 등 지난해부터 장편영화 네 편이 극장을 찾았다. 그는 "(연기에) 탄력이 붙어서 그런 듯하다. 나이가 그런지 연기 이력이 그럴 때라 그런지 요즘 좀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을 안 하면 신경이 되려 예민해진다. 힘든 일로 쌓인 피로는 일로 풀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5월 '최종병기 활' 촬영을 마치자마자 제주도에서 단편영화를 찍었다. 차기작도 이미 정해졌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을 밑그림 삼은 '은교'가 촬영 대기 중이다.
"30대 초반까진 온전히 한 작품을 끝내기까진 부담스러워서 그 다음 영화를 못했어요. 이젠 부담감도 많이 무뎌진 듯해요. 프로야구 선수처럼 겨울에만 쉬고 계속 출전하는 기분으로 연기하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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