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제수로기구(IHO)에 서한을 보내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내년 4월 IHO 총회의 논의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입장 전달에 대해 겉으로는 "실무전문가들의 기술적인 의견 표명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 당국은 당혹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유엔 쪽 채널 등을 통해 사태의 추이를 탐색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분쟁이 있거나 경합이 있는 해역의 경우 병기하도록 하는 게 관례이며 국제사회의 컨센서스도 동해와 일본해 표기를 병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돼 있다"면서 "미국의 입장은 일본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동해 표기 문제에서 아직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줄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울대 정인섭 교수는 "현재 국제적으로 일본해 명칭이 통용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은 종전의 의견을 그대로 표명한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해로 단독표기되더라도 별 손해가 없다는 판단을 할 것이고, 중국도 동해 표기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이용중 교수도"미국은 미일동맹의 하부에 한미동맹을 넣고 있고 아직까지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지도에도 일본해로 나와 있다"며 "미국이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북방 4개도 문제에서는 일본측 입장을 들어주는 걸 보면 우리 정부의 외교 노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동해 명칭과 관련한 그간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2000년 일본측 조사에서 국제적으로 2.8%가 동해를 병기했는데, 2009년 우리 조사에서는 동해 병기 비율이 28%까지 올라왔다"며 "2002년, 2007년 IHO총회에서는 분쟁이 있으니 아예 표기하지 말고 백지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정도로 국제적 인식이 호전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도 "IHO 상황을 결코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며 "IHO가 최근 두 차례의 총회를 거치고도 해도집 개정판을 내지 못한 것도 동해 병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 주장에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대부분의 주요국들이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기존 관행대로 '일본해'표기를 지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내년 4월 개최될 제18차 IHO 총회에서 전체 회원국(한국 제외 83개국)을 상대로 공동표기 표결을 제안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1992년부터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해줄 것을 IHO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IHO는 1929년부터 발간해 온 <해양과 바다의 경계> 책자를 통해 일본해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기구가 결정한 바다의 표준 명칭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지도를 제작할 때 그대로 따른다. 2007년 IHO 총회에선 남북한이 나서서 표결에 부치자고 요구했으나 일본의 반발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후 IHO는 1953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 3판 발간 이후 동해∙일본해 명칭 문제 때문에 수십 년째 4판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실무그룹까지 구성하며 2년 동안 양국 간 타협점을 찾도록 중재했다. 이번 실무그룹이 보고서를 만들면 내년 총회에서 이를 토대로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해양과> 해양과>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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