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한국시간) 끝난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스타는 캐디였다. 바로 우승자 아담 스콧(호주)의 캐디로 얼마 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로부터 해고 당한 스티브 윌리엄스였다. 우즈가 거둔 메이저 14승 중 13승을 함께 한 윌리엄스가 느닷없는 해고 통보에 지난 12년을 반추하며 배신감을 느꼈을 법했다. 그런 그가 스콧을 도와 우승을 하게 했으니, 드라마도 이보다 극적이긴 힘들 듯싶다. 언론들도 파안대소하는 윌리엄스와 1오버파로 37위에 그쳐 시무룩한 우즈의 사진을 함께 실어 얄궂은 인연을 부각시켰다.
■ 이 스토리를 접한 골프 팬들이 윌리엄스의 복수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냥 통쾌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기대하던 '황제의 부활', '신화의 재연'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과거 전성기 때 우즈가 우승권에서 멀어지면 그 대회의 TV시청률이 반토막 났고, 우즈가 2009년 불륜 스캔들, 이혼으로 슬럼프에 빠지면서 골프 인기가 예전만 못해진 것도 이런 심리를 잘 보여준다. 부인도, 스폰서 회사도, 스윙 코치도 떠난 우즈에게 쇠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수록 골프 팬들은 그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 세계 언론들이 우즈의 몰락을 스포츠면에 다룬 그 날, 1면에는 공교롭게도 '달러 제국의 몰락', '미국 패권의 쇠락'이라는 제목으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낮춘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실렸다. 미 백악관이 "멋대로 결과를 짜맞췄다"고 분노했고 "2조 달러짜리 실수"(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여전히 미국에 트리플A를 주겠다"(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는 반격이 나왔지만, 이날 문을 연 아시아 증시는 동반급락으로 우울한 답을 했다. 한국 증시에서도 닷새 동안 무려 169조원이 날아갔다.
■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한 사실상의 제국이었다. 로마제국, 대영제국도 영원할 수 없었듯 미국의 패권 상실도 역사적 필연일 것이다. 미 역사학자 알프레드 맥코이는 지난해 '미 제국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글을 통해 2025년쯤 몰락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 "너무 이르다"는 반론이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늦다"는 분석이 나올 법하다. 문제는 우즈의 부진이 골프계를 침체시키듯 미국의 쇠락이 세계질서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싫든 좋든, 서서히 퇴장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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