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의장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은 2008년처럼 미국에서 촉발된 공포가 뒤덮여 있는 상황. 9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세계 중앙은행 수장'을 자임해 온 그가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리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가 높은 만큼 우려도 크다. 정작 버냉키 의장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아 보이는 탓이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그가 '3차 양적완화(QE3)' 카드를 꺼내들 것인지 여부다. 양적 완화는 연준이 시중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조치. 기준금리(0%)를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기 부양 카드다. 버냉키 의장은 2008년과 지난 해 두 차례 걸쳐 각각 1조7,000억달러와 6,000억달러를 푸는 양적 완화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문제는 앞선 1, 2차 양적완화 당시와는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 지난해 2차 양적완화를 결정할 당시 미국의 기대 인플레이션률은 1.5% 안팎에 불과했지만, 8일 현재 미국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2.26%로 껑충 뛴 상황이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추가로 달러를 시중에 공급할 경우 인플레를 더 자극할 공산이 크다"며 "부작용에 대한 외부의 반발은 물론 연준 내부에서조차도 QE3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QE3 카드를 던지기에는 시기적으로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 시장의 공포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일시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당장 금융시장이 요동을 친다고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QE3 카드를 던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는 기대 이상의 호조를 보이는 등 경기 회복세 지속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히 남아있다. 홍순표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일본 대지진의 영향도 사라지는 시점이어서 하반기 경기에 대한 전망은 좋았다"며 "미국으로부터 더 이상의 악재가 나올 것이 많지 않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버냉키 의장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미국 정치권은 지난 1일 국가 부도(디폴트)를 막기에 급급, 재정지출을 줄이기로 합의한 상황. 재정적자를 감축을 위해 정부 지출을 과도하게 삭감할 경우 경기를 부양할 수단이 제한돼 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그에게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유럽도 지난해 그리스 사태 이후 각국이 재정지출을 줄이면서 '긴축 리스크'가 커져 경기 부양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FOMC 회의보다 오는 26일 와이오밍주 휴양도시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준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을 주목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버냉키 의장이 지난해 QE2 구상을 밝힌 것도 잭슨홀 회동 때였다. 이번 FOMC에서는 가능성만 열어둔 채 향후 금융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뒤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QE3를 제외하고 정작 FOMC에서 버냉키가 던질 카드는 미 정책당국이 경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정도의 신호에 그칠 공산도 없지 않다. 제로 금리 기조를 장기간 유지한다거나 경기 불안으로 묶여 있는 미국 기업들의 유보금 약 3조달러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 즉 법인세 감면 등 기업 규제 부분을 완화해 주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시장을 안심시키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버냉키 의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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