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또 하나의 대형 암초를 만났다. 정치권이 가까스로 부채한도 증액에 합의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모면한 것도 잠시, 증시 폭락에 이어 국가신용등급 강등까지 경제 회생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가뜩이나 쌍끌이 공포(미국의 더블딥과 유로존 재정적자 위기)에 떨고 있는 세계 금융ㆍ실물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등급 강등 파장의 범위와 강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현 시점에서 금융시장과 소비자가 체감할 충격파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물경제 경색 불가피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해당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커졌다는 의미다. 위험부담을 상쇄하려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국채 수익률은 장기적으로 오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미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 이와 연동된 회사채 및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 등 시중금리가 덩달아 오른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금융 비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투자와 고용창출 등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부채질한다. 미국은 소비가 실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나 된다.
JP모건체이스는 등급 강등으로 미국의 국채 수익률이 0.7%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용으로 따지면 이자를 무는 데에만 매년 1,000억달러에 달하는 정부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는 셈이다. 미국은 지난해 회계연도에도 이자비용으로만 국내총생산(GDP)의 2.7%(4,140억달러)를 썼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미국과 교역의존도가 높은 국가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연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미국 경제의 침체가 아시아 국가의 수출 및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강등 효과 시장에 이미 반영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등급 강등을 충분히 경고해온 만큼 위험 요소 역시 상당 부분 시장에 반영돼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신용등급은 AA+로 하락했지만 채무를 상환하기에 부족한 정도는 아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최고등급인 AAA를 받은 나라는 독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15개국 뿐이다. S&P는 AA+을 '아주 충분히(very strong) 지불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등급'으로 정의하고 있다. 뉴욕증시가 지난주 대규모 투매사태로 폭락했을 때에도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2.34%를 기록, 최근 10개월 사이에 최저 수준을 보였다.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투자업체 제프리스의 워드 매카시 수석 금융 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은 위기가 닥칠수록 숨을 곳을 찾는 속성이 있는데 현재로선 금과 미 국채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투자자들이 당장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할 가능성은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신용등급은 장기부채 수익률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며 "미국의 단기부채 신용등급은 A-1+로 가장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다른 AAA 신용등급 국가로 옮겨갈 가능성은 있으나 미 채권시장 규모(35조달러)가 워낙 큰 탓에 분산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달러화는 아직까지 국제 사회의 기축통화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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