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이다. 뉴욕발(發) '검은 금요일'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슈퍼파워 미국의 신용등급이 70여년 만에 강등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당장 코스피지수 2,000선이 붕괴된 국내 증시에 추가 충격파가 불가피한데다,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물가상승 압박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경제불안 심리가 가세할 경우 경기 회복세에 본격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나마 실적이 좋은 수출 대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경기 위축과 경제불안에 따른 달러 변동성은 우리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게 분명하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수출 성장세를 이끌었던 주요 품목은 상대적으로 경기변동에 민감한 휴대폰과 자동차, 자동차 부품 등이었다"며 "미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들 품목의 대미 수출 증가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인상 카드를 쓰기가 어려워진 점도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 순위로 설정한 정부에겐 부담스럽다. 전문가들은 한은 금통위가 이달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해왔으나, 이번 사태로 금리 동결 관측이 우세해졌다. 서향미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가 폭락과 미국 사태로 한은 입장에선 경기에 대한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며 금리 동결을 점쳤다.
국내 증시도 당분간 침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의 충격이 그대로 반영되는 국내 증시의 특성상, 투자심리가 '혹한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홍순표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투자 심리가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재가 또 터져 충격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단기적인 충격을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국내 금융시장 지표도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한국정부 발행 외화채권에 대한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5일 현재 115bp(bp=0.01%)로 작년 11월 30일(122 bp) 이후 8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DS는 채권 발행 기업이나 국가 등이 부도가 나더라도 원금을 상환 받을 수 있는 금융파생상품으로, 그 위험도가 커질수록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미국발 악재가 예상됐던 상황인 만큼 단기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상징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디긴 하겠지만, 더블딥(이중침체)으로 갈 것이라는 징후가 아직 없는 만큼 패닉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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