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간이 무덤'은 영하 196도인 액체질소탱크다. 한 생을 다한 사람은 땅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지난달 23일 사망한 미국 과학자 로버트 에틴거는 냉동고를 택했다. 언젠가 소생할 날을 기다리면서. 그는 1960년대 죽은 사람을 되살릴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시신을 냉동 보관하는 인체냉동보존술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다. 냉동고에 누워 부활을 꿈꾸는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250여명. 에틴거 박사는 그의 주장처럼 간이 무덤에서 온전히 나올 수 있을까?
냉동인간 깨어나도 정상 활동 힘들어
현재 인체냉동보존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모두 7곳. 그 중 미국 알코르(Alcor)사는 올해 5월 기준 가장 많은 시신(104구)을 냉동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 시신 한 구를 냉동 보존하는 비용은 20만달러(약 2억700만원). 이들은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저온에서 혈액을 모두 빼내고 부동액을 넣은 뒤,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에 보존한다.
뇌만 냉동 보존하기도 한다. 영화 속 로보캅처럼 미래에는 다른 신체부위를 기계로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용은 8만 달러다.
최철희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뇌의 신경세포는 가장 좋은 조건에서 얼리고 녹여도 살아날 확률이 50%에 그친다"며 "조직의 30%만 남아도 재생이 되는 간과 달리 신경세포 중 절반이 죽은 뇌는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냉동인간이 깨어난다고 해도 정상적인 지적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설령 인지를 할 수 있다 해도 팔을 흔들거나 걷는 등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몸은 미세한 전기신호로 움직인다. 가령 끓는 물에 손을 대면 찰나의 순간에 '뜨겁다'는 신호가 신경세포를 거쳐 뇌로 전달된 다음, 다시 뇌에서 보낸 신호가 운동신경을 자극해 손을 피하는 식이다. 이 때 신호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잇는 시냅스를 무수히 많이 건너게 된다. 최 교수는 "전기신호는 시냅스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된다"며 "신경세포가 망가져 이 물질이 분비되지 않으면 신호전달도 잘 이뤄지지 않아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분 많은 세포 얼다가 터져
우리 몸의 80%는 물이다. 혈액을 빼낸다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체세포들이 십시일반 갖고 있는 물은 꽤 많다. 이런 이유로 체세포를 얼리고 녹이는 일도 쉽지 않다. 물이 얼면 부피가 10% 가량 는다. 늘어난 부피를 견디지 못하고 세포막이 터지면 세포는 죽게 된다. 다세포 동물인 사람은 단세포처럼 순식간에 얼리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정자의 냉동보관은 큰 문제가 없다. 서주태 관동대 제일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이미 영하 70도 이하에서 정자를 냉동 보관하는 정자은행이 운영 중"이라며 "정자 수는 수 억 마리 이상이라 생존율이 1%만 되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난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지난해 급속난자냉동법으로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논문을 낸 송영석 단국대 파이버스시템공학과 교수는 "수정된 난자는 계속 분화하며 사람 몸에 있는 모든 세포를 만들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돼도 기형아 출산 등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난자는 지름이 80~100마이크로미터(㎛)로 정자보다 10배 가량 크다는 점도 냉동을 까다롭게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DNA 손상 적지만 단백질이 문제
그럼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물질은 어떨까. DNA는 매우 안정적인 구조여서 얼리고 녹여도 크게 이상이 생기진 않는다. 김연수 인제대 인당분자생물학연구소장(식의약생명공학과 교수)은 "해동하면서 DNA를 이루는 두 가닥의 염기서열 중 하나가 끊어질 수 있지만 끊어진 DNA를 이어주는 생체물질이 있어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DNA보다 구조가 불안정한 단백질은 손상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인체 냉동 보존술을 주장하는 이들은 현재 기술 수준으론 어려워도 미래에는 나노미터 크기의 로봇이 손상된 세포 등을 치료할 수 있어 희망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김 교수는 "사람을 냉동 보관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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