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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새 장편소설 '나나'/ 두렵지만 뿌리치기 힘든… 팜므 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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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새 장편소설 '나나'/ 두렵지만 뿌리치기 힘든… 팜므 파탈

입력
2011.08.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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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ㆍ예술에서 질리지 않는 테마를 꼽으라면 으뜸은 치명적 매력의 악녀, 팜므 파탈 이야기가 아닐까. '파멸로 이끌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두렵지만 아름다운 여성'은 가까이는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에서 멀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이렌까지 뿌리가 깊다. 단순한 골격의 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되풀이 돼 온 까닭은 그 매혹의 원천을 쉽게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일 터다. 때에 따라 공포이자 매혹으로서, 단죄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란 정반대 이미지로 출몰하는 이 여성상은 가부장적 질서 바깥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중견 소설가 서하진(51)씨가 이 오래된 문제적 여성 팜므 파탈 이야기에 도전했다. 지난해 현대문학에 연재해 최근 펴낸 장편소설 <나나> (현대문학 발행)다. 역시 팜므 파탈을 그린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제목을 따왔다. 그간 <착한 가족> <요트> 등에서 중산층 가정의 인물과 심리를 섬세하게 다뤄온 그는 "착한 사람만 주로 다루면서 인간의 복합적인 측면을 그리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악녀를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나나는 빼어난 미모와 함께 화려한 거짓말로 주변인을 자신의 욕망 아래 무릎 꿇게 만드는 악녀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구별하지 않았으며 그저 자신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선하며 그 반대의 것은 나쁘다고 믿었다. 이야기를 꾸며내고 그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를"(36쪽) 즐긴다. 주변인들은 그녀의 말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그 눈빛이 그지 없이 아름다운 까닭에 그저 경탄의 눈으로 보고 사로잡히고 만다. 그의 의붓오빠마저도.

특히 갤러리를 운영하는 나나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노리고 학위를 조작하고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유혹한다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신정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서씨는 "신정아 사건에서 일부 모티브를 따오긴 했지만, 신씨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소설의 기본 축은 나나와 의붓오빠 인영, 그리고 실종된 새 아빠와의 관계다. 부모의 재혼으로 나나와 함께 살게 된 인영은 어린 시절부터 나나에게 끌리지만, 그녀의 유혹을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못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새 아빠의 실종도 나나의 유혹과 관계돼 있음이 드러난다.

작가가 구축한 악녀의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노루 로드킬에서다. 밤길 국도에서 노루는 달려오는 차 앞에서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속절없이 즉사한다. 헤드라이트에 눈이 멀어버려 옴짝달싹을 못한 것이다. 소설의 이 대목은 실제 작가가 몇 년 전 용인 인근의 국도에서 노루를 친 경험이 반영됐다. 차에 치기 직전 서씨와 마주친 노루의 눈은 '휘황한 빛에 사로잡힌 시선'이었다고 한다. 설맹(雪盲)과 같은 그 눈에서 작가가 떠올린 것은 바로 매혹된 자의 시선이었다. 서씨는 "잊히지 않는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 소설은 바로 그 경험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악은 그렇게 휘황한 빛처럼 인간을 마비시키고 사로잡는 강렬한 힘이다. 서씨는 "사람 마음의 깊은 곳엔 악을 거부하면서도 동경하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악의 대변자로 등장한 나나가 홀린 이들이 꼭 소설 속 등장인물만은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애초 악녀를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그려보고 싶었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며 "나나에게 동정도 들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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