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조국인 한국에서 자랑거리가 되고 싶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 그는 한국 사회에 우지끈 파열음을 낸 주인공이다. 혼혈인이 단군의 DNA 흥건한(요즘 같은 다문화 시대에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가깝겠지만) 우리의 소중한 일부임을 온몸으로 가르쳐 준 것. 그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 사회는 그를 향해 부글부글 끓어 가며 이 명제를 확인했었다. 그리고 이젠 농구 선수 문태종(미국명 제로드 스티븐슨ㆍ36·인천 전자랜드)이다. 워드와 마찬가지로 한국 출신 어머니와 미국인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한국 국적(미국과 복수 국적)을 얻고 태극 마크까지 달자 우리 사회는 제2의 워드 신드롬에 한껏 빠져들었다. 워드도 그렇지만 그는 참 반듯한 사람이다. 소위 '멀쩡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평생 철이 안나 '무철파'를 고수하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 세상에 차별받는 혼혈인으로서 이렇게 훌륭히 성장할 수 있었다니 참 고맙다. ●그는 또한 어머니 나라를 향한 애정이 절절하다. 그래서 적은 연봉에도 한국 프로 선수가 됐고, 우리 국적까지 갖게 됐다. 덕분에 그는 국가 대표의 영예를 얻었지만 그에겐 이마저도 무척 부담스럽다. 2일 경기 용인시 KCC 연습체육관에서 다른 대표 선수와 함께 훈련 중인 그를 찾았다.
_와, 이젠 대표 선수다.
"내가 한 일을 나도 믿을 수 없다. 마치 꿈 같다. 깨면 확 사라져 버리는 꿈. 나도 좋지만 어머니(문성애ㆍ55)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머니는 내 소식 듣고 거의 우셨다. 그게 더 마음이 저린다. 어머니가 나를 키우면서 절절했던 마음이 읽히는 것 같다."
_어머니가 올림픽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런던행 비행기표를 사겠다고 했다는데.
"2012년 런던올림픽의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해 9월 15일부터 중국 우한(武漢)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우승해 반드시 올림픽에 나갈 것으로 믿고 표를 미리 사겠다고 하신 것이다. 아들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_올림픽에 가면 당연히 아들이 표를 사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히히, 물론이다. 기쁘게 사 주겠다."
_어머니 나라를 선택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머니는 내 삶의 근원이다. 당연히 어머니 나라인 한국도 내 삶을 부여한 조국으로 여기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내가 2010, 2011시즌 받은 연봉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원래 받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그래도 내 조국 한국에서 뛰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의 외가 식구들도 소중했다. 그들과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고 싶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대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부분도 작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대표 선수가 되는 것도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와 조국. 이런 것들이 나를 붙잡고 있다."
_2011, 2012시즌엔 연봉 대박을 쳤다. 연봉이 1억원에서 4억6,000만원으로 올랐고, 그게 한국 프로 농구 신기록이라고 한다.
"그건 고맙지만 사실 원상회복 수준이다."
_아버지(타미 스티븐슨ㆍ57)에게 죄스런 마음은 없나.
"아버지도 100% 동의했다. 아버지는 농구인이어서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의 엄청난 의미를 안다. 어머니와 같이 림픽 간다고 한다."
_올림픽 본선에 가면 미국과도 붙을 텐데 불편하지 않겠나.
"곤혹스런 질문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 전혀 없다. 두 나라 다 내 나라 아닌가. 다만 미국은 세계 최고의 팀이다. 모두 진정한 스타로 구성돼 있다. 그런 팀과의 경기니 죽어라 뛸 생각이다."
_미국 팀 누구와 한번 붙어 보고 싶나.
"마이애미 히트의 르브론 제임스."
_스타일이 비슷한가.
"운동 능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슛은 내가 더 잘 쏠 걸."
_농구 선수 문태영(미국명 그레고리 스티븐슨ㆍ33·창원 LG)과 동생 문태영을 말한다면.
"어릴 때부터 농구를 같이했고 한국까지 함께 왔다. 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형 말도 잘 따른다. 선수로 봐도 대단한 존재다."
_문태종 선수보다 나은가.
"지금 시점이라면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나을 거다."
_남동생이 한 사람 더 있다는데 그 사람도 농구하나.
"데니스는 미국 퍼스트시티즌뱅크 직원이다."
_어떤 점이 허재 대표팀 감독을 매혹시킨 것 같나.
"클러치 슈터로서의 능력일 것이다. 한국에 온 뒤 지난 시즌 전자랜드에서 이런 역할을 했다. 아슬아슬한 막바지 동점 상황에서 관중들을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는 한 방 말이다."
_4쿼터에 사고를 많이 쳐 '4쿼터의 사나이'로 불리는데.
"대표팀에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_남몰래 특별한 훈련이라고 하나.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그냥 하지 않았다. 구체적 상황을 가정하고 했다. 가령 지금 2점 뒤져 있고 4쿼터가 3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3점 슛 한 방이 필요한데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면서 연습을 했다. 또 학교부터 프로까지 정말 오랜 기간 농구를 했는데 이런 경험이 침착한 농구를 가능하게 했다."
_선수로서는 나이가 환갑인데 이 때문에 체력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40분 내내 풀 타임으로 못 뛴다' '수비에 문제가 있다' '순발력이 떨어진다'고들 하는데.
"올해 1월부터 법무부가 복수 국적을 허용하면서 이번에 비로소 한국 국적을 신청했고 대표팀에도 뽑히게 됐다. 사실 체력이 최고점인 몇 년 전에 이런 제도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어머니도 이런 얘기를 계속한다. 체력 문제는 나 역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하지만 농구에서 체력이 전부는 아니다.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_다른 대표감 귀화 선수인 전태풍(전주 KCC) 이승준(서울 삼성)은 안 뽑혔는데 미안한 마음은 없나(국제농구연맹 규정상 혼혈 선수는 1명만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다).
"없다(웃음). 사실 그 선수를 훌륭하다. 충분히 뽑힐 자격이 있다.그런 점에서 미안하다. 하지만 허 감독이 팀 구성상 나를 필요로 했다고 본다. 두 사람은 나이도 젊으니 앞으로 기회가 있을 것이다."
_한국말은 하나.
"쪼끔(한국말로). 다른 사람들은 말하는 것보다 읽는 게 어렵다는데 나는 반대다. 읽는 건 약간 하는데 말하는 건 거의 못한다."
_한글은 어머니에게 배웠나.
"아니다. 귀화시험 볼 때 학원에 가서 공부했다. 안 하던 공부하느라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다."
_한국말을 몰라 플레이에 지장은 없나.
"약간 있다. 게임 중 쓰는 말들은 모두 영어 용어여서 크게 지장이 없다. 하지만 수비할 때 누가 맡으라고 다른 선수를 불러야 하는데 이름을 잘 못 외우겠다. 그래서 선수들 영어 이름을 내가 자의로 막 붙여 부르고 있다. 작전 타임 때는 감독의 지시를 100% 이해해야 하고 나도 다른 선수들에게 이렇게 하자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문제다. 그래서 통역을 붙였다."
_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단 한 번도 올림픽을 밟지 못한 한국 남자 농구에게 올림픽 티켓을 안겨야 한다.
"아시아선수권에서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우승 이외에는 없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치겠다."
_중국과 중동 가운데 어느 쪽이 강한가.
"세계 각국에서 뛰었지만 중국이나 중동에서 해 본 경험이 없다. 그 선수들의 실력을 잘 모르겠다. 가서 부딪혀 봐야 선수들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라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_허 감독은 중국 중동을 꺾을 비책을 누설하던가.
"지금은 대표팀 전체가 일단 기본 체력을 기르는 단계여서 아직 거기에 대한 얘기는 없다."
_대표팀 훈련이 처음인데 고되진 않은가.
"운동량이 엄청나다. 사실 전자랜드에선 연습 때 나하고 서장훈(5월 창원 LG로 트레이드)은 열외였다. 그런데 전원 열외 없이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뛴다."
_특별히 부과된 개인 과제는 없나.
"아직은 없다."
_허 감독 좀 무서운 스타일 아닌가.
"선수 개개인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는 편이다. 연습 중간 중간에 상태를 꼭 묻는다.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_다른 선수들이 피부가 검다고 왕따하지 않나.
"큰형처럼 잘 대해 준다. 다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밥 먹을 때 친해지기 어려운 게 문제다."
_대표 선수 중 누구하고 제일 아삼육인가.
"양동근(울산 모비스)이다. 영어 제일 잘한다. 얘기가 된다."
_대표 선수 중 선수로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없나.
"한국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 아닌가. 모두 엄청나다. 전부가 내 스승이다."
_지난달 26일 유니버시아드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는 별로였는데 29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선 훨훨 날더라.
"4월에 연습하고 한 번도 볼을 안 잡아 봤다. 그래서 처음엔 고전했다. 그런데 그 사이 컨디션이 올라왔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의 전초전으로 다음 달 열리는 윌리엄존스컵대회에 나는 출전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 갑자가 참가가 결정돼 컨디션을 미리 조절하지 못했다."
_몸은 어느 정도 만들어졌나.
"60~70%다."
_60~70%가 이 정도니 컨디션이 좋아지면 대표팀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겠다.
"구원자까지는 모르겠고 조력자는 가능할 것 같다."
_허 감독은 식스맨이 아닌 주전 기용 의사를 비치던데.
"컨디션 회복이 관건이다."
_한국인 문태종으로서 각오 한마디.
"한국에서 뛰면서 나에게 이렇?많은 우군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족도 그렇고, 팬도 그렇다. 가족들한테도, 팬들에게도, 또 나라에게도 자랑거리가 되고 싶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 문태종은, 한국 농구 슛쟁이 계보 이을 전천후 슈터
문태종은 천생 슛쟁이다. 어떤 곳에서든 슛을 던져 링에 콕 꽂아 넣을 수 있는 전방위 득점 능력을 갖췄다.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창조성, 긴박한 상황에서 자기를 잃지 않는 냉철함도 돋보인다.
한국 농구는 그동안 수많은 슛쟁이들을 배출했다.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문경은 등 이름만 들어도 상대편을 벌벌 떨게 하던 선수들이 넘쳤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전문 슈터의 계보가 확 끊겼다. 문경은이 대표팀에서 물러한 이후 가장 기대를 모았던 방성윤은 잦은 부상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최근 은퇴를 결정했다. 이규섭 전정규 조성민이 나름 활약했지만 대안이 되기에는 모자랐다.
이런 상황에서 문태종이란 존재가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2010년 전자랜드에 입단한 문태종은 적지 않은 나이와 새 리그 적응이라는 핸디캡을 짊어지고도 지난 시즌 전자랜드의 정규 시즌 준우승을 이끌며 MVP 후보에도 거론될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클러치 능력. 전자랜드의 지난 시즌 1쿼터 평균 득점은 18.38점으로 리그에서 최하위인 반면, 4쿼터 득점은 평균 20.66점으로 창원 LG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순전히 ‘4쿼터의 사나이’문태종 덕이다.
문태종의 지난 시즌 득점은 17.43점으로 5위. 52.9%의 야투 성공률과 43.9%의 3점 슛 성공률에서 보이는 것처럼 안정감도 높다. 자유투 성공률 역시 85.1%에 이른다. 그는 득점뿐 아니라 리바운드 5.13개(18위), 어시스트 3.2개(11위) 등 다방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신들린 활약을 한 그가 체육우수인재로 법무부의 특별귀화 승인을 받자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허재 감독은 “이충희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제대로 된 슈터”라며 바로 그를 발탁했다.
문태종의 고향은 서울 용산이다. 군인인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현재는 미국 국적)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 노스캐롤라이나→벨기에→노스캐롤라이나를 옮겨 다녀야 했다. 학교도 이곳저곳을 전전했지만 농구 선수가 된 중학교 이후 리치먼드대까지 그는 가는 곳마다 농구 천재로 통했다.
그러나 천재에게 좌절은 너무도 뜻밖에 찾아왔다. 마이애미 히트에 발탁됐지만 갑작스런 미국프로농구협회(NBA) 소속 선수들의 파업으로 신규 선수 모집이 중단되면서 그의 꿈이 좌절된 것. 그렇지만 그는 절대 농구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다.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로 진출했다. 입단 첫해에 그는 MVP가 됐고,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러시아 터키 세르비아 등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 늦깎이로 한국 무대에 데뷔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농구인. 현재 하부 리그인 미국농구협회(ABA) 소속의 한 구단에서 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태종 태영 형제를 농구 선수로 길러 낸 것도 아버지다. 어머니는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