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6)씨는 지난 5월 간호사 이모(25ㆍ여)씨가 가족 치료에 무성의하다는 이유로 얼굴을 때렸다. 또 그를 말리는 의사는 흉기로 위협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이 간호사는 자신의 목을 잡고 때리려는 김씨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김씨는 "나도 손가락을 다쳤다"며 쌍방 폭행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간호사 이씨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붙여 검찰에 송치했다. 목격자 진술과 현장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이씨의 행동을 김씨의 폭행을 막기 위한 소극적 방어 행위로 판단, 이씨의 정당 방위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쌍피'로 불리는 쌍방폭행 피해 사건이 정당방위로 처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찰청은 폭력사건 쌍방입건 자제 지침을 지난 3월 초 일선 경찰에 내려 보낸 뒤 정당방위 처리 건수가 1월 17건에서 6월엔 146건으로 급증했다고 5일 밝혔다.
하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선 방어 행위여야 한다. 상대방의 폭력이 중지된 상황에서 이뤄진 실력 행사는 정당 방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수십 대를 맞는 동안에는 가만 있다가 이후 뒤쫓아가 때렸다면 쌍방 폭행이 되는 것이다.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발 행위를 했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집적거리거나 욕설로 상대 비위를 건드려 발생한 폭력 행위에 대한 대응은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담배 연기를 상대에게 내뿜는 행위도 도발행위로 본다"고 말했다.
대응 방법과 수위도 정당방위 판단의 중요 요소가 된다. 폭력의 정도가 가해자의 폭력 행위보다 크지 않아야 하고, 상대방의 피해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아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8가지 기준이 모두 충족되면 정당방위로 본다"며 "하지만 일부 조건이 결여되더라도 사회 통념에 비추어 정당방위를 구분한다"고 말했다. 간호사 이씨가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지만 정당 방위로 인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정당방위 판단은 보다 엄격하게 이뤄진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물론 '해를 가할 의사' 여부까지 들여다 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의사(意思)는 형체가 없어 수사기관의 참고인 진술, 피해ㆍ가해자 진술의 신빙성 및 구체성이 판단 기준이 된다"며 "경찰이 제시한 기준은 수사 단계의 기준이지 법적 기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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