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문이 100년 가까이 정치를 주물러온 나라. 그러면서도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권력을 세습한 독특한 정치구조. 세계 경제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한 인도 얘기다.
인도 현대정치사는 네루-간디 가문이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부터 딸(인디라 간디), 외손자(라지브 간디)까지 3대째 총리를 배출했다. 이들의 집권 기간만 37년이다. 외손자며느리(소냐 간디ㆍ65)는 현재 집권 국민회의당 총재로 인도 정계의 거물이다.
인도 최고 정치명문가는 이제 5세대 권력자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주인공은 소냐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41)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현지시간) "네루-간디 가문의 황태자 라훌이 권력의 정점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하버드대를 나와 인터넷회사를 경영하다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라훌은 사무총장 자격으로 2009년 집권당의 총선 압승을 진두지휘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카리스마를 뛰어 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냐 간디는 총리 위에 있는 인도 정치의 1인자다. 1998년 정치에 뛰어들어 8년 만에 국민회의당에 권력을 되찾아준 주인공이다. 하지만 외국인 출신(이탈리아)이라는 자격 시비 논란이 불거지자 총리직을 스스로 고사했다.
라훌에게 갑작스레 기회가 찾아온 것은 어머니의 병환 때문이다. 자나르단 드위베디 국민회의당 대변인은 4일 "미국에서 소냐 간디 총재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회복까지는 2~3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정부는 소냐 간디의 정확한 병명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복부 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당은 소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당을 이끌어 갈 4명의 지도부를 선임했는데 그 안에 라훌이 포함됐다. 언론들은 총선을 3년 남겨둔 시점에서 라훌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만모한 싱 현 총리의 나이(79세)와 부패스캔들, 경제 실정으로 인한 낮은 지지도 등을 두루 고려할 때 라훌이 총리직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물론 라훌에게도 넘어야 할 산은 있다. 어머니와 가문의 후광을 탈색시키는 일이다. 라훌은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언론과 야당이 틈만 나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가문과 연계해 폄하하는 탓이다.
라훌도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조용히 친서민 행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 도보 행진을 했다. 주정부가 고속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토지를 강제 매입하고 있다는 농민들의 불만을 직접 청취하기 위해서다. 5월에는 주정부의 토지매입 정책을 비판하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우타르프라데시주는 인도 최대의 인구밀집 지역이지만 야당이 주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라훌로서는 이 지역 농민의 표심을 잡는 일이 총리직으로 가는 첫 시험대가 되는 셈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