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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빌라이제이션' 세계를 압도한 6개 무기 무뎌지고…500년 황금기 끄트머리에 선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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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빌라이제이션' 세계를 압도한 6개 무기 무뎌지고…500년 황금기 끄트머리에 선 서양

입력
2011.08.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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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라이제이션/니얼 퍼거슨 지음·구세희 김정희 옮김/21세기북스 발행·572쪽·2만2,500원

역시 화두는 '중국'이다. 해마다 10% 안팎의 고속성장,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이 나라가 세계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국과 유럽의 기세를 꺾고, 중국이 정화의 남해원정단이 과시했던 옛 제국의 영화를 되찾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인가. 금세기는 과연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인가.

올해 초 영국서 출간되자마자 이목을 끌었던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시빌라이제이션> 은 이같이 달아오르는 중국에 대한 세계의, 특히 서양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공생적인 양극체제를 의미하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말을 만든 이 경제사학자는 국제경제나 정치의 역학 관계 변화라는 현실 분석을 통해 세계 패권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훨씬 역사적이고 거시적이다. 명과 오스만제국의 쇠퇴 이후 500년 가까이 서양 문명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은 그런 상황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문명사적인 변화라는 관점에서 살핀다.

'만약 당신이 1411년에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면 동양 문명을 누리던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을 것'이라고 퍼거슨은 말한다. 그때 베이징에서는 자금성 건축공사가, 톈진에서 항저우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대운하 수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기세를 몰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중반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을 잃고 망연자실했던 서유럽은 이제 그 후유증에서 서서히 회복하려던 참이었다. 공중위생은 여전히 불결하기 짝이 없었고 전쟁은 그칠 줄 몰랐다. 1500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인구 60만에서 70만을 자랑하던 베이징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상위 10곳 중 유럽 도시는 파리 한 곳이었고 그나마 인구는 20만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 중국이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고 말하면 여전히 코웃음 치는 사람이 있겠지만, 당시 "서유럽이 500년간 세계의 나머지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면 그저 정신 없는 사람의 헛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 헛소리가 결국 현실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1900년이 되면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10곳 중 아시아권은 도쿄 하나뿐이고 '서양 문명은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참고해야 하는 표본'이 돼 버렸다.

퍼거슨은 서양 문명이 세계를 제패한 동력을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사회, 직업윤리 등 여섯 가지로 꼽고 이를 설명하는 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유럽은 여러 나라와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렸지만 그런 '경쟁'은 군사기술의 혁신을 촉진했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징세 방식을 발달시켰다. 이슬람이 과학혁명에서 서유럽에 밀린 것은 '유럽의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교회와 국가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에 무한한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차이는 군사적 우열로 직결된다.

그는 똑같이 식민지였던 북미가 남미보다 잘 살게 된 것은 영국 정착민들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과 완전히 다른 재산권이나 정치제도를 확립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침략한 것은 기관총의 힘이라기보다는 열대병을 예방하는 백신 덕분이었으며, 증기 기관이나 공장 시스템의 확산 훨씬 전부터 영국에 대량 소비사회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었고 이것이 산업혁명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급격한 산업화를 이끌어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퍼거슨은 지금 세계는 '서양 지배 500년 역사의 끄트머리'에 서 있으며 '동양에 패권을 내줄 징후'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서양을 나머지 지역보다 우월하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더는 독식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자본주의가 있고 이란은 과학을 얻었으며 러시아에도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아프리카도 현대의학의 혜택을 보고 있다.

'한 문명이 약해지고 다른 하나가 강력해진다'는 퍼거슨의 책은 그러나 읽기에 불편하다. 아시아의 부상을 '인간 사회에 현존하는 최고의 제도'라는 서양 문명이 보편화한 결과라고 보는 그의 시각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어지간히 서양중심적이라는 인상을 떨쳐내기도 힘들다. 책의 부제를 '서양과 나머지 세계'라고 단순화한 것도 그렇고, 북미와 남미의 성패를 거기에 정착한 유럽인들의 제도적인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중국의 승리에 손 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던 그가 서양문명에 진정한 위협이라고 본 것은 실은 서양문명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무기력함, 그리고 역사적인 무지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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