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그랬어요/문경보 지음/샨티 발행·224쪽·1만3,000원
영균이가 반 친구 지갑을 훔친 건 지갑 속 돈이 탐이 나서가 아니다. 훔쳐도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 건 더더욱 아니다. 그게 들통 나서, 술만 먹으면 자신을 때리고, 결국 엄마까지 집 나가게 만든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싶었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자신이 차려온 밥상을 발로 걷어 차버린 '그 인간'이 미워서 '도둑놈' 소리 들으려고 한 거다.
하지만 영균이의 마음 속에 있는 아버지는 밉고 무섭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불편한 다리로 생계를 꾸리며 자신을 공부시켜주는 고마움도 자리잡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영균이와 마주한 선생님이 아버지를 대신해 "네가 그렇게 힘든 줄 정말 몰랐다. 미안하다"고 말해 주자 영균이는 소처럼 붉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큰 덩치로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외로워서 그랬어요> 에는 모두 29편의 청소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울 대광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아이들 상담도 하고 있는 문경보 교사가 경험한 요즘 10대들의 고민이다. 외로워서>
학교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달프고,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린다. 지각한다고 집으로 전화해 곤히 자는 어머니를 깨운 담임 교사에게 따지러 온 인식이는 다른 교사가 참견을 하자 "제3자는 빠지라"고 씩씩거렸다. 홀어머니가 밤잠 못 자 가며 식당일 해서 학교 보내주는 게 너무 미안했는데 전날 식당에서 어머니가 쫓겨난 뒤였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일찍 부모를 여읜 뒤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만날 가출에 무단결석 하던 옛 제자 철균이는 치매로 고생하던 할머니가 결국 저 혼자 남겨 두고 돌아가신 뒤에야 철이 났다. 스무 살 청년은 술에 취해 장례식장 바닥을 뒹굴며 "나는 상복 입을 자격이 없다"고 운다. 문 교사가 할머니 영정 앞에서 "철균이 이제 철 났으니 그만 놓아 주시라"고 한 뒤 스승과 제자가 부둥켜 안고 운다.
진로나 학업 스트레스도 중요한 상담 내용이다. 어느 날 고 3 제자가 문 교사의 귀갓길을 가로 막고 섰다. 좋지 않은 성적이지만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게 너무 기뻐 가족보다 먼저 친한 친구에게 문자로 알렸다. "넌 참 좋겠다"는 답장이 왔고 그날 오후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우울증이 있던 친구에게는 고등학교의 문을 넘어서 나가는 게 그리도 힘들고 무서웠던 거다.
사춘기를 겪거나 지나오며 어른의 세계에 다가서는 그들은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외롭다. 저자가 이 책을 양치기 소년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은 왜 늑대가 왔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산 위에서 긴긴 시간 홀로 보내야 하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산으로 달려간 마을 어른들은 소년의 마음을 헤아려 등을 다독거려 주지도,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도덕 타령이나 했다.
우리나라 고교생의 70%가 우울증세를 보이고 그 가운데 4명 중 1명은 자살까지 생각해 봤다는 조사가 있다고 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스트레스 공화국이다. 이 책의 바탕이 된 학교 내 청소년 상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불쌍해서 여러 번 눈물 나게 만드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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