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저지선'이라던 주가 2,000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미국의 더블딥(이중침체) 공포 때문이라지만 세계 주요국보다 반응속도가 더 빠르고, 낙폭도 더 크다.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여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데다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세력이 외국인인 탓이다.
미국 채무협상에 가려졌던 더블딥 우려가 '공포'로 번지면서 코스피지수는 1일부터 5일간 10.5%나 폭락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다우ㆍ-6.2%)은 물론, 일본(닛케이ㆍ-6.7%), 중국(상하이ㆍ-2.6%) 등 주변 아시아 국가보다도 낙폭이 훨씬 크다.
한국 증시가 유독 많이 망가진 이유는 무엇보다 코스피 2,000시대의 상승주역이던 외국인이 하락주도 세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부각됐던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5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무려 3조5,960억원을 순수히 팔아 치웠다. 올 들어 순매도액이 가장 컸던 2월의 3조4,756억원을 뛰어 넘는 수치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위원은 "신흥국 가운데 한국 금융시장만큼 개방된 곳이 없어 그간 외국인들의 투자처로 각광 받았지만, 그만큼 차익실현 후 떠나기도 쉽고 글로벌 경제위기 때마다 자금을 빼내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등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풀어 놓은 유동성이 몰려들면서 코스피지수는 작년 말부터 사상 최고치 기록경신 행진을 이어갔는데, 지난 2월 외국인이 이익실현을 위해 매도 폭탄을 쏟아내면서 2,000선이 와르르 무너졌다.
외국인의 절대적 영향력은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 이후 세계 증시는 속절없이 추락했지만, 한국은 외국인의 매수 동력을 발판 삼아 사상 최고치(4월1일ㆍ2,121.01)를 기록했다. 일본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한국이 되레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에 외국인들이 적극 투자한 덕분이었다.
이처럼 외국인의 매매 행태가 즉각적일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수출주도형 국가이기 때문이다. 솔로몬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여서 경제 자체가 대외 악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며 "투자자 입장에선 글로벌 경제 변수만 보고도 한국에 투자할지 말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외국인의 발길을 돌려 세울 수 있는 방안 역시 지금으로선 희망적인 글로벌 경제 지표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우리투자증권 송재학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들이 다음주 미국의 실업률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추가 부양안 발표 여부, 유럽중앙은행(ECB)의 재정정책 등을 지켜본 뒤 투자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증권 박승진 선임연구원 역시 "차례로 발표되는 지표와 향후 정책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증시의 상승 시점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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