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났는데도 집중호우가 잦은 현상을 놓고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했느니, 한국형 스콜이니 등 설명이 구구하다. 하지만 기상청은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화한 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미국 지리학자 글렌 트레와다는 최한월(最寒月)의 평균 기온이 섭씨 18도 이하이면서 월평균 기온이 10도가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인 경우를 아열대 기후로 정의한다. 여름보다는 겨울 기간의 기온이 아열대성 기후 판정의 관건인 셈이다. 트레와다 정의에 따르면 제주와 남부지방 일부만이 아열대 기후대에 속한다.
■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아열대 기후의 북방한계선이 조금씩 북상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는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다. 부산이 영하 12.8도까지 떨어져 96년 만에 최저기온을 기록하는 등 이상한파가 이어져 신빙하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여름철 강수패턴만 아니라 사계를 놓고 보면 아열대 기후를 말할 계제가 못된다는 뜻이다. 서울 등에 내린 집중호우도 동남아지역의 스콜과는 발생 원리가 전혀 다르다. 그러면 요즘의 잦은 폭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상전문가들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활동을 주목한다.
■ 장마는 동아시아 상공에서 벌어지는 북방 대륙기단과 남방 해양기단 간의 치열한 세력 싸움의 산물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대결하는 동북아 국제정치 역학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6월 들어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상해 한랭건조한 북방 대륙계 고기압과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면서 장마가 시작된다. 그러다 7월 하순께 더욱 강성해진 북태평양 고기압이 대륙고기압을 만주지방까지 완전히 밀어붙이면 장마는 끝이다. 그 후 한반도는 두 세력이 역전되는 8월 말까지 북태평양 고기압의 폭염 치하에 놓이게 된다.
■ 올해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른 북상으로 예년보다 10일 이상 장마가 빨리 시작됐다. 중부지방에서 북방세력과 남방세력이 장기간 공방을 계속하면서 예년보다 3배나 많은 비를 뿌렸다. 그러다 7월 중순 북태평양고기압이 북방계 기단을 북한 쪽으로 밀어 올리면서 두 세력의 싸움이 끝났다. 그러나 불철저한 승리였다. 후방지원이 달렸는지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했고, 그 틈을 타 집중호우가 게릴라처럼 엄습했다. 올 여름 한반도의 난폭한 기상현상은 장마 후 북태평양고기압의 패권이 확실하게 관철되지 못하는 탓이라고 봐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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