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발의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다수 서울 시민들에게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야권이 주장하는 전면 무상급식이 옳으냐, 서울시의 단계적 무상급식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 시장과 의회, 교육감을 뽑아 권한과 책임을 위임한 건 서로 조화하고 협력해 제반 시정을 원활히 추진하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들 3자가 정책 협력에 실패해 그러잖아도 폭우와 염천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지지 여부를 직접 물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건 수치스런 민폐이자 지자제의 총체적 실패라 할 만하다.
하지만 기왕에 180억 원의 예산과 막대한 사회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투표 실시가 확정된 마당에 새삼 공자님 말씀을 되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투표를 둘러싼 논란의 실체를 밝히고 그 사회적 의미를 분명히 함으로써, 돈 들이고 수고한 만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뜻을 모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참여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24일로 확정된 투표의 성공적 실시 여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만한 논란 중의 하나는 투표의 적법성에 관한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무상급식 관련 정책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므로 주민투표 발의권도 전적으로 교육감이 갖는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했다. 비슷한 논리로 민주당 역시 법원에 '주민투표 청구 수리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낸 상태다.
반면 서울시는 무상급식 조례가 서울시 예산을 들이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투표 역시 지방자치법 상 주민투표 대상인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공방은 결국 법원의 판결 이전까지는 정치적 공방에 불과하다. 법원 판결 전까지는 투표를 한다는 걸 전제로 시민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하는 게 옳다고 본다.
투표 문구의 적절성 여부도 논란이다. 확정된 문구는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중 택일토록 돼 있다. 민주당 등은 두 안이 모두 사실상 단계적 무상급식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두 번째 문구에 '전면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면 무상급식'은 지난해 6ㆍ2지방선거에서 곽 교육감과 야권이 대대적으로 쓴 표현인 만큼, 이제 와서 시비를 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건 이번 투표의 사회적 의미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이냐의 문제다. 어떤 식의 출발과 경과를 거쳤든, 투표는 무상급식 문제를 넘어 대학 반값등록금부터 최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구제책 등에 이르기까지 여야 구분 없이 정치권에서 난무하고 있는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확인하는 고도의 정치적 이벤트가 됐다. 오 시장 역시 이번 투표가 복지 포퓰리즘과의 성전(聖戰)임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오 시장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편가르며, 막대한 예산 낭비와 불법을 자행하는 나쁜 투표'로 규정하고 시민운동 형식으로 투표 거부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 시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시민들은 포퓰리즘에 대한 충정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해도, 자신의 투표가 결과적으로 오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들러리 행위로 전락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 시장에게 국가대계를 위한 사심 없는 충정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투표에 나설 용의가 없는지 묻고 싶다.
1880년대의 보수 우파 독일 재상 오트 폰 비스마르크(1815~1898)는 "일반 국민이 무산자를 책임 지고 지원해야 한다"는 국가사회주의 식 발상을 천명한 후 "누구든 이 개념을 포용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고 했다. 집권을 위한 선심, 이게 복지 포퓰리즘의 알량한 정치적 본질이다. 이번 투표에서 시민들이 올바른 천심(天心)을 확실히 보여주길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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