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 제천에서 매우 특이한 바둑 대회가 열렸다. 7월 30일~31일 이틀간 제천 박달재수련원에서 열린 '2011청풍명월바둑축제'다. 전국에서 68개팀 400여명이 참가해서 열전을 벌였지만 흔히 생각하는 그런 바둑 대회가 아니다. 남녀노소도, 기력도 불문하고 정말 바둑을 좋아하는 전국의 바둑인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1박 2일간 원 없이 수담을 나누며 흠뻑 바둑에 취했던, 말 그대로 흥겨운 잔치 한마당이었다.
대회는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뤄 단체전으로 진행되는데 강자들의 독식을 막기 위해 선수 구성이 고수부터 하급자까지 골고루 이뤄진 팀이 유리하도록 했다. 대회 진행 방식도 매우 자율적이다. 대회장이 따로 마련돼 있기는 하지만 서로 뜻이 맞으면 아무데다 편한 곳에 바둑판을 펼쳐 놓고 대국해도 된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수담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시상 방식도 특이하다. 1등상이 통돼지 바비큐 한 마리다. 그 밖에 성적에 따라 닭백숙 30마리에 소주 두 박스, 꿀 한 병, 감자 한 푸대, 옥수수 한 보따리 등 다양하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상품들이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 없어진다는 것. 첫 날 경기를 마친 후 참가자 전원이 함께 나눠 먹는다. 아직 우승자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자기가 낸다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식사를 즐긴다. 다음날 대회가 끝나고 상품의 주인이 정해지면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 한 번 하면 된다.
이 같이 특이하고 재미있는 대회 방식 때문인지 매년 참가팀 수가 늘고 있다. 1인당 3만원씩 참가비를 받는데도 참가 신청이 너무 밀려 주최측에서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숙소 사정과 원활한 대회 운영을 위해 출전팀을 40팀 정도로 제한하려 했지만 워낙 신청이 폭주한 것은 물론 대회 당일 아침에 현장으로 바로 들이닥친 팀도 적지 않아 결국 대회 규모가 당초 계획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지체 장애인팀인 '동쪽바다', 팀원들의 나이 합계가 400살이 넘는 최고령팀 '봉석기우회'가 눈길을 끌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비롯해 정수현, 김동엽, 김철중, 박승철이 심판 위원으로 수고했고 김효정, 김혜민, 박지연, 문도원 등 여자 기사들도 자리를 함께 해 바둑인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편 프로 기사 양건과 박지훈은 친분 있는 아마 바둑인들과 함께 팀을 이뤄 대회에 출전했다.
팀을 구성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사람도 70여명이나 됐다.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하지만 여름 휴가를 겸해서 바둑잔치 구경도 하고 전국의 바둑인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다.
올해는 특히 부대 행사로 '바둑 가요제'가 신설돼 대히트를 쳤다. 대회 참가자들에게 좀더 재미있는 여흥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에 쏟아진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참가자 중에는 오히려 바둑보다 가요제 입상에 더 신경을 쓴 듯 분장이나 의상 준비가 대단했고 노래 실력도 거의 프로 수준이었다. 여자 프로 기사 박지연은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가요제 최고 스타로 떠 올랐고 중견 기사 김철중도 숨은 노래 솜씨를 뽐냈다.
대회 참가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처음 참가했는데 장기 자랑처럼 다 함께 즐기는 행사들이 인상적입니다. 승부를 가리는 대회보다 이런 축제 형식의 대회가 더 즐겁네요." 인천에서 참가한 '최후의 만찬'팀의 유창훈씨의 참가 소감이다. 명지대 바둑 지도사 과정 수강생들로 구성된 '명바사'팀의 김성수 씨는 "18급부터 7단까지 함께 팀을 꾸렸다"며 "그동안 청풍명월배에 몇 번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가요제에 대비해 팀원들이 함께 의상까지 맞춰 입었다"고 말했다.
바둑 대회 우승은 수담회, 가요제 대상은 고양시선수단이 차지했지만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이기에 시상식까지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이어졌다. 일반 바둑대회는 수백명이 출전했더라도 대회가 끝날 즈음에는 입상자들만 남는 게 보통이지만 청풍명월 바둑축제는 거의 전원이 끝까지 남아 우승자를 축하했다. 주최측에서도 성적 우수자 뿐 아니라 부부 참가자, 자매 참가자, 최연소 참가상(5살), 공로상 등 다양한 명분으로 참가자들에게 꿀, 감자, 옥수수, 칡즙 등 푸짐한 상품을 나눠 줬다.
올해는 날씨도 도와 줬다. 대회 직전까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 많았는데 대회 기간 중에는 반짝 햇살이 비쳤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오히려 무더위를 식혀 줘, 바둑을 두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2001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7회째인 청풍명월바둑축제는 이제 바둑계에서 특색 있는 여름행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초창기부터 대회를 주관해 온 임창순 제천시바둑협회 전무이사는 "전국의 바둑인들은 이제 여름 휴가철이면 으레 제천에 와서 1박 2일 수담?즐기는 걸로 알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좀더 규모를 키워 중국과 일본의 바둑 동호인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추진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해마다 유럽에서 열리는 바둑 축제('유럽바둑콩그레스')에는 한국 바둑인들이 참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열리는 바둑축제에 유럽의 바둑인들이 오게 만들어야 할 현실적 이유다. 청풍명월은 지금 아시아 최고의 바둑 축제를 꿈꾸고 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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