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 신화의 대명사인 강남 한복판에 물 폭탄이라는 대형 재해가 터졌다. 앞으로 강남 부동산 시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가뜩이나 강남 지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강남 지역 사람들은 이번 재해가 강남 부동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내심 기대한다. 부동산 강남 불패 신화가 물 폭탄으로 좀 흔들리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을 강타한 물 폭탄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이 근본적 치유가 불가능하고 반복적인 것이라면 부동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송파구 풍납동이 지금은 오히려 침수 피해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으로 변한 것처럼 원인이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라면 부동산 시장에 주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 건물 화재가 발생한 뒤 한동안 전국 주상복합의 인기가 폭락했다. '망각의 힘'인지 모르나 최근 해운대 지역의 주상복합 시장이 서서히 살아나는 것으로 볼 때, 대형 재해가 특정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면 시장에 대한 충격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현재 풍납동의 경우 인근 잠실동의 부동산 가격에 못 미치고, 비록 부결되긴 했지만 몇 년 전에는 아예 잠실 8, 9동으로 동명 교체를 구청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만큼 대형 재해가 심리적으로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또 물 폭탄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난 서초구의 경우 우면산 인근 지역의 아파트 저층과 산비탈 주택 지역 등은 벌써 가격 하락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행정안전부의 특별재난지역 지정에 대해서도 주민들 간에 상습 침수 지역으로 낙인 찍힐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번 강남 물 폭탄의 원인은 집중호우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하천을 낀 완만한 저지대에 개발이 집중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집중호우로 양재천 등에서 불어난 물은 하수구에서 역류해 강남대로변과 하천 인근 주택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추진하면서 풀 한 포기 없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강남을 '코팅'한 것이 문제였다. 흙을 밟을 곳이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번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에는 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것이다.
강북 지역의 경우 산이 많아 나무가 물을 품어주고 경사도 커 빗물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강남은 녹지가 유난히 부족하고 경사도도 낮아 물이 빠르게 빠져나갈 수 없다. 특히 포장도로 비중이 높아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 여지가 없고 땅속의 흙이 물을 머금어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다 건물이 너무 빽빽해 물이 빠져나갈 통로가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이번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집중호우가 다시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하수관이나 펌프장 시설 확장 등의 대증요법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오히려 저지대 주민들을 위해 도시계획을 완전히 새롭게 짜지 않으면 예방이나 대비가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시간당 100mmm 폭우에 대응하는 서울 시내 간선 하수관거 성능 향상을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공사가 불가피하고 17조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발표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 도시방재시스템을 시간당 100mm의 집중호우에 견딜 수 있는 이상기후 대비 체제로 전환하려면 이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해도 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물 폭탄 문제는 매우 구조적인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지금까지는 여유 있는 수요자들이 강산이 보이는 조망권을 선호했지만(물 폭탄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는 주택시장에서 '안전 모드'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풍납동처럼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전문가들도"산 주변 주택지 같은 곳은 기피할 가능성이 있고, 방수나 방재 시설이 잘된 안전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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