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한 국가보훈처의 결정 과정이 절차적으로 부당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안씨는 육군사관학교(17기) 및 이른바 하나회 출신으로 5공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으로서 ‘전두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97년 징역 2년6월이 확정돼 복역했다. 안씨가 올해 6월 25일 지병으로 숨지자 유족들은 국립묘지 안장을 보훈처에 신청했다.
정부 당연직 8명과 민간위원 7명, 총 15명으로 구성된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는 2차례 회의에서 의견이 크게 엇갈렸고, 보훈처는 돌연 5일 서면을 통한 표결로 안장여부를 결정했다. 민간위원 3명이 “갑작스러운 서면심의 강행 처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보훈처는 곧바로 서면심의를 강행했다.
사퇴한 심의위원인 박복순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서울 보건대교수)은 “그 동안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심사하며 합의를 도출해왔고, 이보다 훨씬 작은 범죄도 상당수 부결해왔다”며 “위원들이 심의 자체를 거부했는데도 보훈처가 무리수를 두어 안장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심의위원장인 우무석 보훈처 차장은 “장군의 경우 (화장이 아닌) 시신 안장을 해야 해 (서둘러 결정하기 위해) 서면심의도 병행해왔고, 유족이 49재(12일) 전까지 결정해 달라고 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주먹구구식 심의와 기준설정도 문제다. 그간 보훈처는 각종 범죄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내세워 왔다. 2006년 보훈처는 신군부에 협력을 거부(1980년)했다가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약 2년 반 복역했던 고(故) 강창성 전 의원에 대한 국립묘지 안장을 부결한 바 있다. 보훈처는 당시 “금고 2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은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으며 일부 생계형 사고를 냈다면 심의를 통해 안장이 허용되도록 한다”는 심의기준을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신군부에 저항한 복역자는 안장이 거부되고,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복역자는 허용된 셈이다.
박복순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은 국립묘지의 영예성(榮譽性)을 훼손하는 심대한 사안”이라며 “앞으로 5공 인사나, 숱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와서 ‘안현태도 되는데 나는 왜 안되느냐’라고 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우무석 차장은 “안씨는 이미 사면, 복권돼서 문제가 없다”며 “이번 결정은 각 위원 개개인의 판단에 의한 결정이며 앞으로도 똑같이 판단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잣대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일부 예비역 장성들과 보수세력의 압력에 휘둘렸다”거나 “전두환, 노태우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 차장은 “재향군인회장과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장,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 육군사관학교 17기 동기회장, 성우회장 명의의 건의서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고 밝혔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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