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 중 하나는 고령화 사회로의 급변이다. 누구나 상황의 심각성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뾰족한 대책이 안보여 모두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듯하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지역적 차원에서도 뭔가 만족할 만한 답을 단기간에 내놓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해온 것 같지도 않고, 그런 만큼 예산 확보는 더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개인들에게 비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써 키운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던 끈끈한 가족관계는 붕괴된 지 이미 오래고, 고용의 안정성 역시 먼 과거 얘기가 돼버렸다.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기도 전에 이런 사태를 맞게 됐으니 경제력 없고 쇠약한 노인들이 택할 수 있는 건 극단적인 길 뿐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혹은 정교하지 못하고 융통성 없는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최소한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성실히 살아도 인간다운 삶을 꾸려가기 힘든 서민층 노인들의 애잔한 사연을 잔잔하게 그려낸 추창민 감독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지난 봄 예상 밖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것도, 주체적인 노년기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많은 이가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넉넉지는 않더라도 생계 걱정은 없이 살아가는 노인 가정은 문제가 없을까.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이순재가 맡은 캐릭터를 통해서도 표현됐듯이, 밥 문제만 해결된다고 노년의 삶에 활력이 절로 생기는 건 아니다. 사랑이든, 일이든, 취미생활이든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몰두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사회적으로 담보돼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은퇴한 사람들이 자진해 '내 나이가 몇 살인데~' 혹은 '왕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하는 체면의 감옥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제8회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될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느라 얼마 전 보게 된 '오텀 골드'(Autumn Gold)는 생동감 넘치고 의미 있는 노년에 대해 많은 힌트를 준 작품이다. 이 다큐의 주요 등장인물은 체코 할아버지(82세), 스웨덴 할아버지(93세), 독일 할머니(85세), 이탈리아 할머니, 오스트리아 할아버지(100세)로 노인 일색이다. 왜 이탈리아 할머니만 나이가 없냐고? 사람들이 나이를 묻고 자신을 노인으로 구분해 배려해주는 게 싫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며 그녀가 촬영 팀에 나이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그 어떤 젊은이보다도 치열하다. 이들은 각각 아파트 베란다, 길거리, 빌딩 계단, 해변, 체육관, 공원 등지에서 틈만 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고 던지고 뛰어 넘으며 육체를 단련시킨다. 물론 이들에게는 노인 대상 세계육상선수권대회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들 모두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들은 성과 이성에 대해 당당히 얘기하고 할머니들은 거울 앞에서 수시로 맵시를 낸다. 마침내 대회가 끝난 결과 희비가 엇갈리고 이들은 마음껏 기뻐하거나 아쉬워한다. 어떤 이는 심판의 판정에 실수가 있다며 서운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들에게 노인이 주책이다라며 핀잔 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은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잉여인간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똑같은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오텀 골드'는 은퇴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계 걱정 없이, 인생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환경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조속히 성취해야 할 미래상이라는 걸 알려주는, 현명하고도 유쾌한 지침서 같다.
김선엽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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