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독도 영유권 주장을 위해 울릉도 방문을 시도하다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한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자민당 의원은 1945년 이오지마(硫黃島ㆍ현재 명칭 이오토) 전투에서 일본군을 진두 지휘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忠道) 육군 대장의 외손자이다. 구리바야시는 당시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항복하지 않겠다며 옥쇄작전을 펴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매우 거세게 저항했고 그래서 미군은 승리하고도 일본군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
신도 의원뿐 아니다. 독도 문제 등을 놓고 도발적 행동이나 언행을 주도해 한일 양국의 갈등을 야기하는 일본 정치인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이나 극우주의자의 후손이 많다. 가업을 이어받는 대물림 정신은 일본의 기업, 연예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정치권에서도 같은 현상이 흔한 편이다.
우익 정치인의 대물림 현상은, 우익적 가풍 속에서 양육한 후손을 정계에 진출시켜 후계자로 키움으로써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이 투영된 결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한일 양국을 떠들썩 하게 한 신도 요시타카 의원은 지방 공무원 출신으로 중의원에서 4선을 한 중진의원이다. 경력에 비해 당내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나 울릉도 방문 소동을 일으킨 뒤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유력 신문사 정치부 기자들조차 "자민당 내에 신도라는 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할 정도다. 일본 정부의 약탈도서 반환조치에 반발, 한국에 있는 일본 문화재 반환을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등 극우성향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신도 의원을 정계에 입문시킨 정치인은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용의자로 복역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이다. 아베 전 총리는 외무장관을 지낸 친한파 정치인인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와 달리 매파형 정치인인 외할아버지를 정치적 스승으로 삼아 평소 역사 문제에 대해 중국과 한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2005년 자민당 간사장 대리 시절 도쿄 메이지(明治)진구 회관에서 열린 지방의원 심포지엄에서 "종군위안부는 허구"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신도 의원의 울릉도 방문 계획을 배후에서 조종한 일본 극우조직 일본회의의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일본회의의 또 다른 배후세력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도 재임시절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한 것" "6ㆍ25전쟁으로 일본이 회생할 기회를 잡았다"는 등의 망언으로 한국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경력이 있다. 그의 증조부인 아소 다키치(麻生太吉)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 및 착취로 악명 높은 아소탄광의 창업주이다.
독도 망언을 일삼는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 중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일본 통일 지방선거에서 보수세력의 압도적인 지지 하에 네번째 연임에 성공한 이시하라 지사는 "특공대를 보내 독도를 탈환해야 한다" "한일합병은 한국이 원해서 한 것"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시하라 지사의 아들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자민당 간사장은 '개인 자격의 방문' 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신도 의원 등의 방한을 허가한 인물이다. 신도 의원이 "당초 당 차원에서 방한을 허가했는데 당 집행부가 개인 자격으로 조건을 변경했다"며 비난하자 그는 "영토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중할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반박,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시하라 간사장의 이 같은 행동이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했다기 보다는 당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이 새로 구입한 항공기의 신규 취항에 앞서 독도 상공을 시범 비행한 것과 관련, 일본 외무성 직원들에게 대한항공 이용 자제를 지시한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외무장관은 한일강제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외고손자이다. 2000년 민주당 소속으로 주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4선을 연임했다. 지금까지는 그의 정치 성향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최근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행보를 두고 일본 정계에서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보수성향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정치평론가는 "재일 한국인에게 불법 정치헌금을 받은 이유로 사직한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무장관은 한국 등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했기 때문에 마쓰모토처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009년 민주당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보수 성향의 자민당이 50년 이상 집권했는데 이들 보수 정치인은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자식들을 정치에 끌어들였다. 유권자들도 유명 가문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익 정치인의 대물림이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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