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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고의는 아니지만' 환상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어둠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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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고의는 아니지만' 환상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어둠과 고통

입력
2011.08.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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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구병모 지음/자음과모음 발행·264쪽·1만1,000원

<위저드 베이커리>와 <아가미>, 두 편의 장편소설로 '구병모식 환상'이란 제 스타일을 확고히 한 소설가 구병모(35)씨는 가장 말이 잘 통하는 동료로 뜻밖에도 김이설(36)씨를 꼽았다. 김씨가 최근 펴낸 장편 <환영>에서 보듯 사실의 촘촘한 구축으로 악몽 같은 현실을 그린다면 구씨는 판타지의 세계를 넘나드는, 스타일상 정반대편의 작가. 근래 한국문학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두 뿔이다. 서로 통할 게 없어 보이는데, 구씨는 "다루는 방식은 상반되지만, 이 사회의 중핵이 어둠에 있다는 데는 뜻이 통한다"며 웃었다.

이 말에 여전히 갸우뚱할 이도 있겠지만 구씨의 새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자음과모음 발행)을 펼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2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2009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나 <아가미>에 잔재한 동화적 색채나 신비적 분위기를 싹 걷어낸 새 소설집은 구병모 상상력의 본색을 드러낸다. 기괴하고 어둡고 파괴적인 색깔을 노골화한 것이다.

7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에 등장하는 사건은 이렇다. 논문 대필로 생활비를 버는 주부는 24시간 칭얼거리는 아이에 시달리다 결국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린다('어떤 자장가'). 담임 교사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소년은 무엇이든 꿰매준다는 가게에 들어가 감각을 일으키는 세포를 모두 꿰매 버린다( '재봉틀 여인'). 술에서 깨 보니 인도 한가운데 하반신이 박혀 꼼짝 못한다. 이유는 모른다( '타자의 탄생'). 새떼가 갑자기 사람을 공격해 죽을 때까지 뜯어 먹는다('조장기'). 식량전쟁을 겪은 S도시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언어 사용에서 비유를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마치...... 같은 이야기').

단편 하나마다 기괴한 상황과 사건이 등장하는데, 허황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비꼬거나 이면의 어둠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폭발력을 내장한 비유적 장치다. '마치...... 같은 이야기'에서 S도시 시장이 비유를 금지시킨 속내는 '미무르'라는 기괴한 동물에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인데, 현실의 '쥐그림'사건을 겨냥한 게 뚜렷하다.

구씨는"소설 속의 환상적 코드는 현실의 일부고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환상이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통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이면의 어둠이란 무엇일까. "이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을 위협하는 덫인 것 같다. 존재 자체가 다른 존재에게 독이 되는 시대,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닐까."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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