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우여곡절 끝에 시리아 사태에 대한 첫 공식 조치를 취했다.
유엔 안보리는 3일(현지시간)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범위한 인권침해와 시리아 정부의 무력 진압을 규탄한다"며 안보리 15개 회원국 간 합의문인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안보리는 성명을 통해 "시리아 정부는 인권을 존중하고 국제법의 의무를 따르라"며 "무력 사용을 주도한 사람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은 3월 중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안보리가 내놓은 최초의 공식 의견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안보리는 6월 초에도 프랑스 주도로 시리아 규탄 결의안 초안을 상정했지만, 국제사회 불개입 원칙을 표방한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밀려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 시작과 함께 시리아 전역이 연일 유혈 사태에 휩싸이자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성명은 시리아 위기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태도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안보리 성명은 한계도 뚜렷이 드러냈다. 안보리가 택한 의장성명(Presidential statement)은 국제법에 준하는 효력을 갖는 결의안(Resolution)과 달리 회원국 간 동의를 전제로 한 정치적 상징성만 지니고 있어 압박 강도가 크게 떨어진다. 때문에 경제봉쇄를 비롯한 각종 제재와 군사개입 등 아사드 정권을 옥죄기 위해 유엔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이는 시리아처럼 민주화 몸살을 앓고 있는 리비아에 견줘서도 여러모로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안보리는 2월26일 리비아 반정부 시위가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무기수출 금지 및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일가의 해외자산 동결 조치 등이 포함된 결의안을 발표했다. 또 이튿날 곧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을 동원해 대대적인 공습을 개시했고, 카다피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배자 리스트에도 올려 놨다.
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의장성명은 결의안에 반대하는 일부 회원국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당초 영국, 프랑스 등 유럽 회원국들이 1일 시리아 민간인 희생자 2,000여명에 대한 정밀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추진했으나 러시아, 중국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어떠한 타협도 없었다"며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아사드 정권에 경고를 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안보리 회원국 중 발언권이 가장 높은 미국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시리아 사태도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은 지난달 아사드 대통령과 핵심 측근 6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경제제재를 단행했지만, 엄포 이상의 수준은 아니었다. CNN은 "미국은 시리아 국민이 수십년 동안 정부의 통제와 분열정책에 길들여져 구심점이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아사드에 맞설 확실한 대안세력이 나타나지 않는 한 굳이 모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아사드 대통령은 4일 1963년 이후 최초로 다당제를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하며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정부군은 이날도 다마스쿠스, 다라, 팔미라 등지에서 계속된 시위를 무력 진압하며, 안보리의 규탄 성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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