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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복지의 길을 묻다] <2부> (5) 빛 좋은 개살구,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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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복지의 길을 묻다] <2부> (5) 빛 좋은 개살구, 건강보험

입력
2011.08.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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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상위계층도 "건보 자기부담률 36%가 부담스러워 진료 포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인욱 차장은 지난해 응급치료 환자에게 빌려 준 대불금을 환수하기 위해 대상자들의 생활수준을 조사하다 깜짝 놀랐다. 대불금을 갚지 않은 환자들에게 소송을 내기 위해 100만원 이상 미납한 1,220건을 정리했는데, 소송으로 대불금 회수가 가능한 여건을 갖춘 대상이 85건 밖에 없었다. 1,135건은 소득이 월 120만원이 안되고 기초생활수급자의 재산기준에도 못 미치는 사람들이어서, 진료비를 갚으라고 소송을 냈다가는 가족이 모두 밥을 굶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응급의료비 대불제도는 교통사고 등 응급상황에서 병원 측이 신원 미확인 등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정부가 병원비를 대납하고 차후 환자가 국가에 상환하는 제도인데,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불제는 법이 정한 일부 응급치료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부분의 일반 질병은 저소득층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지난 4월 무료치료 병원을 찾아 헤매다 사망한 할머니의 사례가 재발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64%에 불과하고, 계층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36%의 자기부담 비용을 대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암 환자, 입원 한 번에 수백만원 본인부담

국내 암 환자 1명당 진료비(사망 시까지)는 평균 1,000만~2,000만원에 이른다. 평균이 이 정도이니 훨씬 더 드는 경우도 많다. 건강보험 암 보장률이 67%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암에 걸리면 본인과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돈은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흔하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간암 환자는 입원을 한번 할 때 마다 건당 총 진료비가 644만원이며 이중 230만원을 본인이 내고 있다. 백혈병 환자는 입원 건당 진료비가 1,669만원에 이르며 이중 441만원을 본인이 부담한다. 그런 입원을 여러차례 해야 한다.

중산층 가정도 감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암환자를 가족으로 둔 저소득층의 고통은 헤아리기 조차 힘들다. 김인욱 차장은 "예전에 응급치료비 98만5,000원을 갚지 않아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판사도 당사자를 하도 딱하게 여겨 60만원으로 깎아 주도록 조정을 했고, 우리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95년 도입된 응급대불 제도의 경우 지금까지 161억원이 지급됐는데, 이중 6억6,800원만 회수됐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없다. 배우자와 1촌 직계의 재산과 소득까지 다 뒤지지만 도저히 회수할 수 없는 가난한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김인욱 차장은 "상환율이 낮다고 지적도 당하지만, 월급을 압류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저소득층의 사정이 뻔히 보이니 무리하게 회수에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응급 대불제도 이용 신청자는 지난해 8,340명으로 2008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일반 질병의 의료비도 대출해 주는 '의료안전망기금'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이내인 차상위 계층 중 26.8%가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고, 치료 포기 사유의 93%가 진료비 부담 때문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차상위 계층 4명 중 1명이 병원비 부담으로 진료를 포기한 것이다.

한편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한 가정도 151만4,000가구(6월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 자체를 거부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보공단은 추후 건보에서 지급한 진료비 전액을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기초생활수급자도 병원비 걱정

보통 기초수급자는 의료비 전액이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법상 기초생활수급자 등 의료급여 1종 대상자는 입원비는 전액 무료, 2종 대상자는 급여총액의 15%를 부담한다. 외래의 경우 방문시 마다 1,000~2000원을 부담한다. 그러나 이는 건강보험 대상에 되는 진료의 법정 부담금이고, 병원의 비급여(건강보험 비적용) 진료비는 본인이 내야 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돈을 안내는 것으로 알았다가 비급여 비용을 보고 실갱이를 벌이는 수급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민간 연구 자료에 따르면 의료급여 환자의 본인부담율은 약 11~1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병원비가 100만원이 나왔다면, 기초수급자도 약 10만원은 본인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많이 보장해 주는 게 어디냐고 할 지 모르지만, 소득 최하위 계층인 수급자들에게는 1,000원도 아까운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이다. 실제 수급자의 24%가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고 이중 81%가 진료비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나와 있는 한 수급자 할머니의 사례는 이런 상황을 잘 보여 준다. 노점상을 하며 손자들을 키우던 할머니는 얼음판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 치료를 받게 됐다. 그런데 치료비 900만원 중 자부담이 190만원이었다. 그는 "수급비를 받아도 병원비 내기에 모자라 결국 카드할부로 지불하고 퇴원했다"고 토로했다. 성치 않은 허리로 다시 노점상을 하기도 힘든 할머니가 매달 날아오는 카드청구서를 어떻게 감당했을지 눈에 선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암, 본인부담률 5%인데… 진료비 왜 비싼가

현재 암의 경우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은 5%에 불과하다. 이 대목에서 큰 병을 앓아 본 사람들은 '그런데 왜 이렇게 암 진료비가 많은 드는 것일까'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실질적으로 암 진료비의 평균 32.1%를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본인부담률'이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를 나타내는 이유는 병원들이 건강보험 대상이 되지 않아 온전히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확대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2009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보고서에서 "암의 경우 법정본인부담률이 2005년 9월 이후 10%, 2009년 12월 이후에는 5%로 낮아지는 등 지속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시행했으나, 높은 비급여 부담률로 인해 실제 건강보험 보장률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비급여'란 어떤 것일까. 병실료와 특진(선택진료)비가 대표적 항목이다. 연구원 자료를 보면 암 환자가 온전히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비 중 30.9%가 선택진료비였고, 24.6%가 병실료이다. 실질적인 치료나 수술료보다 부가적인 서비스가 훨씬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환자가 비싼 병상이나 특진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건강보험이 대부분 보장해 주는 일반병실은 병원 별로 50%만 갖추면 되고, 나머지 50%는 병원들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특실 등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돼 있다. 주요 병원은 병실이 늘 50% 이상 차 있으니 기다리다 못해 비싼 특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부 특실은 하루 100만원에 이르고, 50만원짜리도 많다.

원하는 의사를 골라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입된 특진제도 역시 실제로는 병원이 비선택진료 의사를 제대로 배치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특진 의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는 7월부터 신규증축 병상의 70%를 일반병상으로 하도록 하고, 10월부터 종합병원 이상은 반드시 비선택진료 의사를 배치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그러나 병상 증축분에만 70% 비율을 적용하도록 해서 실질적으로 병실료 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최영순 박사는 "비급여가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 없이는 효율적인 건강보험 운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현재 시범도입 중인 포괄수가제를 확대하기로 하고, 조만간 세부일정을 마련키로 했다. 포괄수가제는 질병별 진료비를 정해 놓고 아무리 병원을 많이 가도 같은 질병이면 같은 진료비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포괄수가제 도입의 관건은 질병마다 적정포괄수가를 어떻게 정하느냐로 귀결되며, 이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정부 간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매해 건강보험에서 지급할 진료비 총액을 미리 정한 뒤에 그 범위에서 지출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진료비를 관리하는 총액계약제 도입을 고려할 수 있지만, 아직 정부에서 검토되지는 않고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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