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서버를 해킹, 아이템을 수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프로그램 복제본 사용료 등으로 수익을 내는 범죄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범죄에 사실상 북한 당국에 소속된 컴퓨터 전문가들이 동원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과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치밀한 범죄 수법
구속된 재중동포 이모(40)씨 등은 2009년 6월 이후 1년 반 동안 총 30여명의 전문가를 북한에서 제공 받았다. 북한의 무역업체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 및 내각 직속 '조선콤퓨터센터(KCC)'의 중국 현지 직원들과 협의해 선별한 해커들이다. 이 과정에 이씨는 자신의 중국 내 송림유한공사 명의로 인력 초청 의향서를 북측에 전달했고 북한 기업은 주중 북한영사관의 승인까지 받아 전문가들을 중국으로 보냈다. 정상적인 협력사업을 가장, 중국 사법당국의 눈을 피한 것이다. 이씨 등은 통상 한 번에 4,5명씩의 북한 해커를 데려와 숙박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며 5개월 가량 중국에 머무르면서 일하도록 했다. 북한 해커들이 한 일은 오토프로그램 개발. 사람의 조작 없이도 게임을 실행시켜 게임 캐릭터의 레벨을 올려 아이템을 취득하는 해킹 프로그램이다. 일명 '게임자동사냥프로그램'. 북한 해커들은 국내 게임서버에 악성코드를 삽입해 '패킷 정보'를 무력화한 뒤 오토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패킷 정보는 게임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송수신하는 데 사용되는 게임업체의 핵심 영업비밀이다.
이후 이씨 등은 컴퓨터 수십, 수백대씩 갖다 놓고 아이템을 수집하는 국내외 '작업장'에 북한 해커들이 만든 오토프로그램을 사용료 월 2만원 가량을 받고 제공했다. 이를 통해 모두 벌어들인 돈은 64억원. 이중 북한 해커들이 받은 돈은 사용료의 55%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북한 해커들은 이 돈 가운데 1인당 월 500달러씩 북한 당국에 송금, 외화벌이 수단이 됐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북한 당국 개입 의혹은
경찰은 4일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는 무역회사로 알려졌지만 그 실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조성, 공급해온 '39호실'의 산하기관"이라며 해커들이 송금한 돈이 통치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피의자 진술에 의하면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해커는 1만여명"이라고 말했다. 북한 해커들이 사실상 대남 사이버테러를 자행하기 위해 서버까지 구비했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북한전문가인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내부 정보기술(IT) 전문가는 3만여명으로 중국에 상주하는 인원도 수천명 가량 될 것이고 평양을 거점으로 오가는 인력까지 더하면 1만명 가량 될 수 있다"며 경찰 발표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내용이 의심스럽다는 비판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해커가 많을수록 일자리를 뺏기는 중국이 북한 해커 1만여명의 자국 내 활동을 허용할 가능성이 낮다. 북한 39호실의 역할도 말만 무성할 뿐 확인된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해커 수나 송금된 돈의 규모, 쓰임에 대해선 제대로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 교수는 "타 국가를 범죄 대상으로 지칭할 때는 범죄의 내용을 명확히 밝힌 후 발표를 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이 없다"며 "또 한편으로 이번 발표는 중국이 북한의 범죄를 방조했다는 것이 돼 한중간 외교적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