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퇴임하는 서울 시내 A교장은 교무실ㆍ방송실의 인테리어공사를 하면서 두 업체와 계약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사에 참여한 업체는 한 곳뿐. 교장의 지인이 운영하는 다른 한 곳은 손 하나 까딱 않고 1,560만원을 챙겼다. 서울시교육청의 특정감사 결과 사실이 드러나 A교장은 퇴임을 한 달 남긴 시점에서 중징계 처분을 받게 됐다.
반면 지난 2월 말 서울 한 초등학교를 퇴임한 B교장은 예산이 없는데도 학교문집을 발간하는 등 무리하게 지출을 늘려 약 9,250만원의 빚을 학교에 남긴 채 떠났다. 그 역시 이번 감사에서 잘못이 드러났지만 이미 퇴직한 탓에 교육청은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었다.
"퇴직 예정 교장들의 마지막 행정은 뒷돈 챙기기 쉬운 교내 공사"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퇴직을 앞둔 교장들의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퇴직한 교장의 경우, 형사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면 어떤 처분도 할 수 없다. 퇴직 연금도 파면 등 중징계 이상이 되어야 일부 깎이는 등 징계가 가벼워 임기 말 교장은 업체들의 로비 대상 1호다.
서울교육청이 지난 6월 퇴직예정 교장이 있는 67개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정감사 결과, 7개 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총 195건의 법령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처분 대상 교장은 총 71명이었는데, 이 중 12명은 이미 전직 교장이라 '퇴직 불문'으로 분류돼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다. 교육공무원법이나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등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직 교장들은 파면 이상은 연금 축소, 정직 이상은 퇴직 시 서훈 수여에 제약을 받게 됐다.
지난해 수학여행 업체에게 뇌물을 받아 경찰 조사를 받은 전국 130여명의 전ㆍ현직 교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경찰로부터 통보 받은 인원이 총 104명이었는데, 현직 교장에 대해서는 파면ㆍ해임 등의 중징계가 이뤄졌지만 절반 가까운 퇴직자(51명)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경기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공기청정기나 의자 등 학교 물품을 구입하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에 사서 뒷돈을 챙기는 것이 전형적인 방식"이라며 "정년을 앞둔 교장들이 시설공사나 물품 구입 등의 명목으로 예산들을 미리 당겨써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육청 관계자도 "이번 감사에서 '이제 퇴임이니까 과감히 하라' '내가 책임질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행정직원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교감이나 평교사 때 교장의 비리를 눈감는 대신 승진에서 혜택을 받고, 나중에 교장이 됐을 때 뒷돈을 챙기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며 "교장의 재직 중에 비리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훈찬 전교조 대변인은 "재직 시 저지른 비리는 퇴직 이후에라도 제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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