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로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 산사태가 발생하고 도로와 주택이 물에 잠기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 차량이 침수되고 토사가 도로와 주택을 덮치는 사고도 있었다. 춘천의 산사태로 자원봉사를 갔던 인하대생들의 사고 소식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폭우가 멈추자 인근 지역의 소방대원, 경찰과 군인들이 수해 현장을 복구하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 않고 뛰어들었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일선 공무원과 공공요원들이다. 또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현장 이해 없이 집행되는 정책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공공부문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수요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공공서비스는 질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인천공항의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에 놀란다. 또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자동차 운전면허 갱신 서비스에서 보듯이 전자정부 구축으로 행정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 높은 수준의 공공부문 서비스는 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정부는 전달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일선 공무원과 공공요원들의 대응성과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공공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선 일선 공무원들과 공공요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책이 집행되는 현장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의 더 많은 이해와 고려가 필요하다. 정책현장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정책구상은 집행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그때마다 새로운 정책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쏟아 낸다. 정치인들의 거창한 정책 구상을 현장에서 모두 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일선 공무원이 이를 이해하면서 일하기도 쉽지 않다. 김대중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의 구상 아래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나 지방분권 일환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실시된 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은 집행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일선에서 필요한 권한과 재원이 주어지지 않은 채 과중한 행정 부담만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에도 발생하고 있다. 엊그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등급판정을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담당해야 하는 수급신청자가 너무 많아 '거짓말을 하는 줄 알면서도 요양등급을 내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인력이 부족하여 정밀한 평가를 시행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부정수급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생계 긴급복지지원금은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씩 남아 다시 국고로 환수되고 있다. 지원금이 필요한 가정인줄 알면서도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지원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공 인력 늘리고 업무 줄여야
최근 복지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다양한 의견들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복지구상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국민의 복지수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알맞은 정책내용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집행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충분히 해야 한다. 공공부분에 필요한 인력을 원활히 공급하고 정책의 효과성을 높여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제시하여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일선 공무원과 공공요원이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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