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둘 이상의 국가 간의 충돌이다. 만일 이 세계가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 하에서 운영된다면 내란이나 폭동, 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구상에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의 역사는 곧 보훈의 역사와도 같다. 우리나라 보훈의 역사는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우거나 전사한 사람에 대해 포상과 추모행사를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역사가 있는 곳에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는 곳에 보훈이 있다는 의미다.
현대사로 범위를 좁혀 정부조직의 틀에서 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2년 후 6ㆍ25전쟁이 발발했고 3년간의 전쟁과 수습기를 거쳐 61년 국가보훈처(당시 군사원호청)가 창설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6ㆍ25전쟁 발발 후 크게 늘어난 군인, 경찰, 향토방위군 등 사상자에 대한 원호가 사회부, 국방부, 내무부 등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61년 7월 6일 군사원호청설치법 제정공포 및 8월 5일 군사원호청 개청으로 본격적인 국가보훈 업무가 시작된 것이다.
개청 당시 전쟁 희생자 중심의 원호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독립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국민의 생명 또는 재산보호 등 공무 수행의 공헌자 등으로까지 보훈대상의 외연은 확장되어 왔다. 또한 지난 50년간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보훈 대상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보상금, 교육 취업 의료 대부 등의 방법으로 지원해 오던 것에 덧붙여 최근의 환경 변화에 대응해 물질적 보상 이외에 나라를 위한 희생과 공헌이 국민들에게 널리 전파되고, 그 정신이 국민의 정신적 귀감이 되도록 하는 선양 사업의 중요성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사회가 변화하듯 보훈환경도 변화해 6ㆍ25전쟁 등 국난 미체험 세대가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특히 다문화 사회가 도래하는 등의 영향으로 국토 수호 등에 대한 역사관이 점차 희박해질 전망이다.
청소년 중에는 6ㆍ25전쟁 발발일을 기억하는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1%이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는 비율은 36%나 된다. 다행히 최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로 튼튼한 안보와 호국보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막연하게'동족'으로 인식해 오던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게 됨으로써 젊은 세대 안보관에 변화가 왔다. 북한의 도발을 통해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이 발현되면서 나타난 천안함 폭침 이후 신세대 안보의식 변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나라의 위급 시 무엇이든 하겠다는 비율은 45.8%(2008년)에서 48%로 상승했고 청소년 스스로 본인의 안보의식이 높아졌다고 응답한 비율도 50.7%로 나타났다.
북한의 도발은 우리 국민이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한 번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가 공고하고 영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과 경각심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외세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힘차게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이 되어 과거 다른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로움은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보훈정신은 그 나라와 사회의 품격과 같다. 국가유공자를 존중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격을 높이는 것이며 사회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역사에서 미래를 찾아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원동력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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