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주부들을 위한 최초의 요리책이 출간된 건 언제였을까? 꼭 100년 전인 1911년, 경성정신여학교를 졸업한 스물 두 살의 한 신여성은 "인류의 생활상 제일 중요한 것은 인류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인데, "조선에는 이에 대한 책자도 없는 것을 큰 유감"으로 여긴다. 그리고 손맛 좋기로 소문 자자했던 어머니 무릎 앞에 앉아 500여가지 음식의 '레시피'를 받아 적기 시작한다.
이렇게 탄생한 책이 한국 근대기 교육자인 방신영(1890~1977) 이화여대 가사과 초대 교수가 쓴 <조선요리제법> . 이 책이 당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해 다시 출간됐다. 열화당이 1800년대 말부터 6ㆍ25 전후까지 출간된 책과 기록물 중 재조명돼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엄선해 출간 당시 모습 그대로 선보이는 '복각본(復刻本)' 시리즈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의 첫 번째 주자로, 500부 한정판으로 나왔다. 조선요리제법>
첫 모습은 필사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1917년 정식 출간되었으며, 이번에 복각된 책은 장안의 지가를 올리며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장기 군림했던 이 책의 8판(1937년). 최근에도 현대에 활용되면 좋을 음식들 중심으로 추려 새로 출간되기도 했을 만큼 한국요리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이번 복각본에는 여성 교육자 김활란의 서문(1934)과 벽초 홍명희의 청으로 국학자 위당 정인보가 쓴 서문(1931)이 함께 실렸다. 실용서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국어학자 이윤재가 교열작업을 맡아 당시 언중들의 실생활 언어를 꼼꼼하게 정돈했다.
책은 오늘날에도 줄곧 식탁에 올라오는 다양한 한국요리를 총망라하고 있다. 요리용어 해석, 중량 비고, 주의할 사항으로 시작해 각종 양념과 소금류 기름류 만드는 법 등을 담은 기초요리법, 젓갈 김치 조림 찌개 찜 무침 나물 구이 국수 엿 화채 죽 국 등을 다룬 본격요리법 등으로 나눠 61개 항목 아래 500여종의 요리법을 담았다.
서양 신문물이 밀물처럼 들이닥친 당대 조선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일부 상류 계층에서 외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외국음식도 상당 분량을 차지한다. '숩'(수프)이라는 장을 별도로 두어 로서아 숩(러시아 수프), 조개 숩 등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버터, 드레싱 제조법은 물론 커피차 끓이는 법, 티 끓이는 법 등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마지막 장에는 특이하게도 갓난아기 젓(분유와 우유) 먹이는 법까지 수록돼 있다.
복각총서의 두 번째 책으로 성공회 세실 쿠퍼 주교가 1932년 지은 <사도문(私禱文)> 도 함께 출간됐다. 사도문(私禱文)>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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