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대 노인 "기초수급비 절반이 쪽방 월세로… 라면만 먹고 살아"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20여 명이 전철 굴다리 밑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대부분 60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이었다. 방 한 칸이 있느냐 없느냐를 빼곤 노숙인이나 쪽방촌 노인들 모두 처지가 비슷했다. 이들은 문 하나만 열면 바로 거리가 나오는 1평 남짓한 쪽방에 살거나 아예 거리로 나앉아 있었다.
쪽방, 기초생활수급의 혜택?
너비가 1m도 채 안 되는 골목을 따라 양쪽에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쪽방촌엔 독거노인 124명이 살고 있다. 노인들은 한여름 방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창문 없는 쪽방이 답답해 거리를 서성이거나 굴다리 그늘을 찾는다. 부엌 침실 거실이 한 평 공간에 다 들어앉은 쪽방의 월세는 15만~30만원. 수급비의 절반이 월세로 나간다. "수급비를 38만원 받는데 방값이 20만원이야."(임모씨ㆍ69) "수급비 43만원 받아서 그 중 25만원을 방세로 내."(최태수씨ㆍ66)
그나마 기초생활수급자격이 있어야 이런 쪽 방 한 칸이라도 얻어 살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141만1,577명, 2010년)중 노인이 26.8%(39만1,214명)다. 반면 자녀 등 부양자가 있어 수급자에 포함되지 못하는'비수급 빈곤층' 103만명 중 대부분이 노인일 것으로 복지부는 추정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인 노인들보다 3배나 더 많은 빈곤 노인들이 정부의 아무런 지원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다.
노인들의 주식은 라면
쪽방촌에서 만난 박찬경(85)씨는 70세가 넘도록 리어카를 끌며 폐품을 모아 생활했다. 모아 놓은 돈도, 일할 체력도 바닥 나 14년 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가 한 달에 받는 수급비는 42만원. 쪽방 월세 22만원을 내고 남는 돈으로 식비와 생활비를 쓴다. 치아가 성치 않아 라면만 먹고 살지만 치과 치료는 언감생심이다. "뭘 드시고 싶냐" 물으니 "이가 안 좋아도 돈만 많으면 라면만 먹겠어. 장어를 좋아하는데 한 마리에 만원이나 해 못 사먹지."라고 속내를 내비친다.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하다 2년 전 서울 북가좌동의 임대주택에 들어간 김학식(61)씨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실패로 가족과 인연을 끊었지만 딸이 소득이 있다며 43만원이던 수급비가 얼마 전 35만원으로 깎였다. 방세 7만원을 내고 두 달에 한번 20㎏ 쌀 한 포대(4만8,000원)를 사 먹는데 쌀 사는 달은 식비가 금세 떨어져 아침 저녁은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점심은 라면으로 때운다. "나는 약을 준비해 놓고 살아요. 살다 살다 못 견디겠으면 그냥 조용히 떠나려고…. "김씨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들렸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1위다. 60대 이상 노인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100명을 훨씬 상회해 20~40명 수준인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다. 7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60명을 넘는다.
노인빈곤 해결… 인식을 전환해야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세요?" 기자의 물음에 많은 노인들은 냉소로 응답했다. 노인복지가 크게 부족한 현실에 대한 체념으로 여겨진다. "얼마 전에 국무총리도 다녀가고 정치인들도 가끔 왔다 가지만 다 말 뿐이지, 그 사람들이 오고 난 후 좋아진 게 뭐 있어요?"(임모씨ㆍ69)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뭘. 근데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수급비는 좀 올라야 돼요."(정모씨ㆍ58)
수많은 1930~50년대 생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노년을 맞았지만 전통적 '효'관념은 너무 빨리 사라졌고, 사회보장제도 도입은 너무 늦었다. 국민연금이 1988년에 도입됐지만 당시 60세를 넘은 이들은 가입할 수 없었고 지금 80,90대가 됐다. 2008년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제도가 그나마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일한 소득보장제도다. 그나마 수혜대상자를 조금이나마 늘리거나 연금수준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나오면 "어떻게 뒷감당을 하느냐?"는 반대여론에 밀려 좌초되기 일쑤다.
복지 전문가들은 노인 빈곤을 방치할 경우 미래 세대를 짓누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김미혜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장은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해 스스로 부양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복지 예산을 적게 쓰려고만 하지 말고 복지 확대로 노인층이 지갑을 열게 되면 내수 경기가 활성화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고를 바꿔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 실효성 떨어지는 노인복지 양대 제도
노인복지제도를 떠받치는 두 축은 2008년부터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다. 그러나 빈곤계층 노인의 생활안정, 장기질환 노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라는 애초의 취지에 걸맞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지난해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65살 이상 노인 372만명이 탔지만'용돈 연금'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월지급액은 올해 단독가구를 기준으로 최저 2만원부터 최고 9만1,200원까지 5단계로 차등화돼 있다. 수급자의 99% 이상이 최고액인 9만1,200원을 타고 있지만 이는 올해 최저생계비(1인 가구 월 53만2,853원)의 20%에도 못 미친다. 기초노령연금법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가입자 3년 평균월소득액의 5%인 급여율을 2028년까지 10%로 인상하도록 돼 있다. 급여율을 매년 0.25%포인트씩 올리면 되지만 정부는 재정부담을 이유로 지난 3년 동안 급여율을 동결해 왔다. 이런 탓에 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썩 높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령연금제도 수급자들의 만족도는 63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복지부는 수급자를 줄이고 수령 액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려 하고 있다.
거동이 힘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수발ㆍ가사지원ㆍ목욕서비스를 지원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자산과 소득에 대한 조사 없이 연간 최대 1,700만원의 급여를 제공해 가장 관대한 복지제도로 꼽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빈곤노인 상당수가 본인부담금 때문에 제도의 수혜를 받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등급 환자의 경우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경우에는 시설이용료의 20%를 환자가 내야 한다. 또한 식사재료비와 이ㆍ미용비 등은 비급여 항목이라 본인부담금이 더 늘어난다. 복지부는 시설을 이용하는 환자의 부담금을 50만원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2008년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험 이용자 및 보호자가 요양보험에 대해 토로한 가장 큰 불만은'본인부담금'(44.4%)이었다. 최현숙 협회 부회장은 "실제로 70만원 정도는 내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며 "현장을 둘러보면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되지 않은 차상위계층 중 자기부담금 때문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 상당수 차상위계층 노인들이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으로 무료로 돌봄서비스를 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 31만 5,994명 가운데 11%인 3만4,000명이 요양보험을 이용하지 않았다. 이들이 모두 본인부담금 때문에 요양보험을 혜택을 포기했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등급 판정자 중 일부는 장기요양보험제도의 혜택을 받는 시설이 아닌 일반 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인부담금은 제도 이용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 복지부의 입장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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