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련은 커녕 기억에도 안 남을…
'침대는 과학입니다'는 광고 문구가 유행할 때 초등학생들이 시험에서 무더기 오답을 내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문제에 아이들이 "TV에서 내가 분명히 봤거든요" 하면서 침대를 고른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최근 '방송사 프로그램 제목 실태조사'를 보면 하도 틀린 제목이 많아 이 정도 이야기는 화제 축에도 끼지 못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맞춤법이 틀린 제목들 중에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제목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었다. '뽀뽀뽀 아이조아'는 '아이 좋아'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 역시 '프러포즈'의 잘못이나 과거 방송됐던 제목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틀린 채 전파를 타고 있다.
'미쓰 아줌마' '싸이킥 히어로'처럼 외래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된소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쁘띠쁘띠 뮤즈'처럼 프랑스어 '프티(Petit)'를 된소리로 잘못 표기해 영어 '뮤즈(Muse)'와 합성한 다국적 조어도 있다.
요즘엔 '스페셜'하고, '베스트'한 프로그램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드라마건 다큐멘터리건 제목에 이런 수식어 하나 정도 붙어서는 별로 특별하거나 최고일 것 같다는 느낌조차 안 든다. 불필요한 외래어와 외국어가 범람해 말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지상파(5월30일~6월5일 방송 KBS, MBC, SBS, EBS 프로그램 358편 대상)의 21.8%가 부적절한 제목을 쓰고 있었다. 불필요한 외국어·외래어, 로마자와 한자 표기를 사용하거나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때문. 케이블(7월3~9일 방송 KMTV Mnet 등 5개 채널 56편 대상)의 경우는 더해 82%가 우리말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케이블에서는 '리얼키즈 스토리 레인보우' '익스트림 데이트쇼 러브스위치'처럼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 아예 'THE BEATLES CODE' 'Bling Bling POP' 'CLUB YD BBB' 'ALL THAT Y-STAR'처럼 로마자로만 표기한 경우도 흔했다.
영어를 섞어야 좀 세련된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실은 부르기 어려운 말은 기억에 남기도 어렵다. 제목의 최고 덕목은 역시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아침마당' '열린 음악회' '전국 노래자랑' '무한도전' '기분 좋은 날' '방귀대장 뿡뿡이' 같은 장수 프로그램의 제목이 좋은 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www.korean.go.kr) '우리말 다듬기' 코너에 가보면 최근 외국에서 불고 있는 한국 가수들 콘서트 유치 기원 모임 등에 등장하는 '플래시몹(flash mob)'을 적당한 말로 바꾸기 위한 투표가 진행 중이다. 후보는 기습집회, 깜짝모임, 반짝모임, 번개모임이다. 외래어나 한자어 제목을 아예 안 쓸 수는 없겠지만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이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도록 적어도 방송사에서는 노력 해줘야 하지 않을까. 프로그램이 종영 되도 제목은 회자된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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