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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희망버스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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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희망버스의 순정

입력
2011.08.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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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제 돈 들여가며 황금 같은 주말을 바쳐서 그 대열에 합류하는지. '절망버스'라는 규탄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지난 주말 부산으로 가는 3차 희망버스를 탔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의 말대로라면 '불순세력의 망동'에 동참한 셈이다. 희망버스를 막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온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부산역 앞에서 펼쳐든 현수막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희망버스 타고 횃불 깽판 벌이는 신종 좌익 빨치산 척결하자.'

영도 주민들에게서 희망버스를 욕하는 고함을 들었다. 왜 남의 동네에 와서 난리냐. 국회 같은 데 가서 하라. 당신들 때문에 집 밖엘 못 나간다.

그럴 만하다. 내 집 앞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집회가 왜 반갑겠나. 하지만 망동, 깽판, 빨치산이라는 격한 말을 듣는 것은 억울하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주민들 불편을 줄이려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이면도로에 모여 밤을 샜다. 신문지나 돗자리를 깔고 길바닥에서 쪽잠을 잤다. 날이 밝자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고 떠났다.

불순분자이니 신종 좌익 빨치산이니 하는 딱지는 더욱 부당하다. 희망버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이 희망버스에 오른 까닭은,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타워크레인의 고공 35m에서 200일 넘게 버티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해고된 노동자들을 염려하는 마음에서였다.

그건 순정이다. 울고 있는 이웃이 딱해서 돌아보는 눈길을 불순하다고 말하는 냉정함이야말로 불순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나도 정리해고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공감의 연대가 희망버스의 이름으로 달렸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가 크레인에서 살아 내려올 수만 있다면 좋겠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책 를 읽은 뒤부터 술만 마시면 그 사람 생각에 우는 주사가 생겨서 그걸 치료하려고 왔다"고 했다. 그 착한 마음들이 험한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진짜 욕 먹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근처의 분식집 주인이 말했다.

"참 딱하다. 죄 없는 사람들만 저래 고생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건데. 죄 지은 사람(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외국으로 도망가서 돌아오지도 않는데."

경찰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한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도로를 점거한 것은 경찰이다. 전경과 차벽이 길을 막고 차량을 세웠다. 귀가하던 영도 주민들도 차에서 내려 멀리 돌아가야 했다. 통행의 자유는 사라졌다. 어버이연합도 나섰다. 그들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가는 길목에서 시내버스를 세우고 검문을 했다. 목검을 든 채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희망버스 참가자다 싶으면 멱살을 잡고 폭언을 퍼부었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나.

희망버스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희망버스가 처음엔 순정이었을지 모르나 정치 행사로 변질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의 조건을 바꾸는 모든 행위를 정치라고 볼 때, 정치 행사니까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참정권은 기본권이다.

순정은 힘이 세다. 순결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상처받기도 쉽지만, 희망이라는 강력한 치료제가 있다. 순정을 짓밟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 그 착한 마음들이 분노로 변할 수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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