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복권이 출시 한 달을 맞았다. 지난달 1일 유통되기 시작해 3일 5회차 추첨을 마친 연금복권은 유례 없는 전량 매진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에 정부는 난감해하고 있다. "복권 구하기가 힘드니 발행량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쇄도하지만, 사행산업을 조장한다는 역풍이 불까 봐 오히려 잔뜩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3일 국내 복권사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에 따르면 통상 휴가철인 7,8월은 복권 비수기인데도 연금복권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7월 한 달 간 기존 로또복권 판매액도 평소와 비슷한 주당 500억원대 매출을 유지했다. 연금복권 열풍이 전체 복권 수요를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전체 복권 매출이 3조원에 육박하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연금복권이 나오는 족족 매진되면서 "복권을 사기 어렵다"는 아우성은 갈수록 극성이다. 연금복권 사업자인 한국연합복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사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는데 판매점당 70장만 주면 어떡하란 말이냐"는 판매업자의 하소연부터 "5회차도 추첨하기 전인데 벌써 8회차 밖에 남은 게 없더라", "예약을 안 하면 아예 다다음주 복권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소비자의 볼멘소리 등이 빗발치고 있다.
이처럼 연금복권의 인기가 높아갈수록 반대로 복권위 사무처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한탕주의' 복권 문화를 바꿔보고자 야심 차게 기획한 연금식 지급상품이 '대박'을 터뜨렸지만, 반응이 너무 뜨겁자 이제 '적당히 좀 팔렸으면'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복권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관리감독을 받는 사행산업이다. 작년 판매량(2조5,255억원)을 감안해 사감위는 올해 복권 잠정매출을 약 2조8,000억원으로 제한했는데, 연금복권의 활약(?)으로 자칫 한도를 넘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연금복권의 전신 격인 팝콘복권은 연 매출이 70억~80억원에 불과했으나, 연금복권은 불과 5주 만에 약 300억원 어치(회당 630만장씩 63억원. 1회 때는 375만장 발행)가 팔렸다. 매출한도를 초과하면 더 내야 하는 부담금도 문제지만, 복권위로서는 자칫 '정부가 나서 사행산업을 부추겼다'는 비난여론에 시달릴 게 걱정이다.
더욱이 지난주까지 당첨자 8명이 대부분 40~50대 회사원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벌써부터 "불안한 노후 탓에 믿을 건 복권밖에 없다"는 정서를 부추긴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연합복권 관계자는 "연금이라는 익숙한 상품개념에다 노후를 염려하는 불안심리가 맞아떨어진 게 인기 비결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홍남기 전 복권위 사무처장(현 재정부 대변인)은 "발행량과 지급액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지만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복권의 사행성을 감안할 때 섣부른 증액은 부작용만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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