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장애인 251만명… 부양의무제 탓에 평생 '부모에 짐'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뭔가 앞날이 보여야 하잖아요. 그런 게 안보이니까요."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최근 5년여 사이 15명의 장애인 부모가 자살하거나 자녀와 동반자살했다"며, 그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심지어 자살한 장애인 부모 중에는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자녀가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식을 위해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51만여명(2010년 12월 기준),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되는 1~3급은 101만명 가량이다(지원범위에 따라 1~2급만 중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일생을 추적해 봤다.
아동기
빈곤의 시작이다. 민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아동 가정이 재활ㆍ치료서비스로 지출하는 비용은 매월 평균 41만원 가량이다. 윤 대표는 "부부 중 한 명은 항상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장애아동 가정은 맞벌이를 할 수 없어, 소득도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가정의 평균 소득은 통계에 따라 일반 가정의 54~68%에 불과하다. 초ㆍ중ㆍ고까지는 특수학교든지,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다닐 수는 있지만 특수 교사가 부족해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 힘들다. 공무원 정원 규정 등에 막혀 현재 특수교사는 7,000~1만2,000명이 부족한 상태다. 상당수 학교가 일반교사에게 특수학급을 맡기고 있다. 지적장애 2급인 중3 아들을 두고 있는 윤 대표는 "그래도 학교에 있을 때가 낫다"며 고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없다고 했다. 장애인의 대학진학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청년기
성인이 된 장애인들은 부양의무기준으로 인해 계속 자신이 부모의 짐이 돼야 한다는 현실과, 일할 곳도 갈 곳도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장애인 고용률은 37.7%이며, 중증장애인(1~2급) 고용률은 15.1%에 불과하다. 서울에 사는 뇌병변장애 1급 진수영(가명ㆍ32)씨는 끊임없이 자립을 시도해 왔다. 기숙시설이 있는 특수학교를 다녔지만 졸업 후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 나왔다. 그 다음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마련한 '체험홈'에 입소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중도 포기했다. 장애인 취업박람회를 찾아갔지만 언어장애도 심해 이력서조차 내보지 못했다. 부모님도 점점 진씨를 버거워 한다. 진씨는 "부모님은 정년퇴직을 하셨고 연세도 많으셔서 용돈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삶의 여건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보호작업장ㆍ근로작업장은 417개(1만1,770명)에 불과하고, 주간보호시설(443개), 장애인복지관(191개), 단기 보호시설(103개ㆍ1,400명)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사정 탓에 취업장애인의 47%가 자영업이다. 이창화(53ㆍ시각장애 1급) 다산복지재단 이사장은 "항상 '사장님'으로 불렸는데, 알고 보면 받아 주는 데가 없어 스스로 창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장년기
40대에 접어든 장애인들의 삶은 더 고달파 진다. 근로 사업장 등 시설도 45세를 전후해 대부분 나올 수 밖에 없다. 젊은 장애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결국 다시 연로한 부모에 의탁해야 한다. 그나마 작업장에 다녀 본 적도 없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부모의 짐이다. 부산에 사는 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 부부인 정선희(가명ㆍ42)씨와 최규식(가명ㆍ39)씨 부부는 해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 왔지만 시부모가 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번번이 탈락했다. 정씨는 "자식이 돼서 보태 드리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부부는 지난해 말 청와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비장애인들의 경우 40살이 된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지, 부모님이 아들과 며느리를 먹여 살리는 개 같은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부모님은 몸이 아프셔서 막노동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부양의무제 폐지ㆍ완화를 촉구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 이애정(가명ㆍ45)씨도 "10월이면 정부 지원 활동지원서비스의 본인부담금이 오르는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아직 말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아버지 명의의 단독주택이 있기 때문이다. 84세의 아버지와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엄마(74)의 한 달 소득은 방을 세놔서 얻는 20만원의 월세가 전부. 이씨는 "20만원으로 셋이서 생활하기가 너무 어렵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아프신데 용돈 받아쓰기도 죄송하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나보고 시설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한 적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년기
평생 고달픔에서 벗어나기 힘든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윤 대표는 "청각ㆍ시각 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들의 경우 평균수명은 비장애인들과 비슷하겠지만, 지적장애인들은 보통 55세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 수명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 시설에 65세가 넘은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땅의 장애인들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어떻게 생을 마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 쥐꼬리 복지
전체 등록장애인이 250만명을 넘어섰지만 복지 혜택 대상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수원에 사는 엄명환(30)씨는 만성신부전으로 1주일에 3번 혈액투석을 받아야 한다. 이런 아들의 신장이식 비용을 마련하려던 아버지는 회삿돈을 횡령해 교도소에 갔고, 그 이후 그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런데 이혼한 어머니와 연락이 돼 용돈을 받은 것이 밝혀져 6월 수급자 탈락예정 통보를 받았다. 일단 9월까지 의료혜택만 유지되지만, 그 뒤는 막막하다. 엄씨는 "어머니께 용돈을 받지 않을 테니 수급비를 지급해 달라고 했더니 구청에서는 '1년 이상 지켜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며 "새로 가정을 꾸려 두 아이가 있는 어머니께 마냥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 했다. 엄씨는 "수급자 탈락시 반드시 소명기회가 있다는 걸 설명하고 안내하도록 하라는 지침이 있던데 나는 그와 관련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고 덧붙였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없이 장애인 복지혜택만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다. 중증 장애인연금 30만1,000명(월 9만1,200~15만1,200원), 장애아동수당 2만3,000명(월 2만~20만원), 경증장애수당(3~6급 대상) 31만2,000명(월 2만~3만원)이다. 장애인의료비 지원(건강보험 본인부담금 경감)도 한해 9만9,000명, 교육비는 1,400명 정도만 혜택을 받고 있다. 모두 가구 소득이 차상위 계층 이하로 엄격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올해 10월부터 5만명(지난해 3만명)이 혜택을 받는다. 소득과는 상관없지만 평가를 거쳐 활동보조가 필요하다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본인부담금이 기존 월4만~8만원 정액제에서 소득에 따라 월 2만~12만원 정도로 차등화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담금이 오르는 사람은 16% 정도이고, 더 많은 사람들은 부담금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강보험료 납부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지역가입자의 경우는 재산도 소득으로 환산돼 부담금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윤종술 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중증 장애아동 돌봄서비스(올해 2,500명 지원)의 경우 비장애인 아이돌봄 보다 훨씬 서비스 시간이 짧다"고 말했다. 1년 320시간이니, 하루 1시간도 안 된다.
일부 장애인단체는 "인권유린 폐해가 심한 장애인 생활 시설을 주간보호시설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생활시설은 452개(2만4,395명)가 있는데, 장애인들이 완전히 격리돼 죄인처럼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생활시설 수용인원을 30인 이하로 줄이도록 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며 "생활시설 확대를 요구하는 장애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활시설 확대를 요구하는 장애인 가정들은 대부분 사회적 편견과 지원 부족에 지친 경우다. 지체장애 1급 김현수(35ㆍ경기 김포)씨는 "시설에 가고 싶지 않아서 가출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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