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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수능이 EBS 암기시험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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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수능이 EBS 암기시험 된다면

입력
2011.08.0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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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대입 전형의 최강 요소라는 교육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ㆍ경제적인 의미 또한 가벼이 여기기 어렵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의 대입시는 수능으로 시작해 수능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겠는가.

수능 성적이 좋은 수험생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수월하다. 수능은 수험생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내신이 안 좋은 학생들이 멋진 '한 방' 홈런으로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제가 수능이다. 그래서 어떤 교육학자는 "수능은 '마약' 같은 존재"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중독성이 있다는 뜻이겠다. 서울 강남에 있는 고교를 나온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재수(再修)를 하고 있고, 이것도 모자라 삼수(三修), 심지어 사수(四修)를 감행하는 이유도 수능이 모든 이에게 도전을 허락하는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대학 수학능력 측정 취지 어디갔나

수능이 다가올수록 학생과 학부모만큼 관계자들도 피가 마른다. 가르친 제자들의 성적이 잘 나오도록 '마술사' 역할을 해야 하는 교사, 문제를 내러 합숙에 들어가야 하는 출제진, 수능 관리 및 감독을 총괄하는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의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국가 시험인 만큼 한 치의 오류도 없어야 하는게 당연하지만, 사람이 하는 작업이라 누수는 왕왕 있어왔다. 6년 전엔 휴대전화 부정사건이 터지면서 교육부 장관이 옷을 벗었고,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엔 복수정답 시비로 수능을 내고 채점하는 교육과정평가원장이 물러나기도 했다. 누구는 이를 두고'수능의 저주'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난해엔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수능 출제ㆍ검토위원으로 참여한 게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사실 어떻게보면 이런 부분은 수능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전체적인 난이도가 들쑥날쑥 하면서 '물 수능', '불 수능'이라는 상반된 해석들이 나온 적도 있었으나, 나름의 변별력을 갖춘 덕분에 그나마 대학들이 믿고 활용할 수 있는 대입의 으뜸 전형요소가 바로 수능이었다.

그런데 올 가을 치러질 2012학년도 수능은 왠지 살얼음판이다. 수능의 전초전이 모의수능인데, 6월 치러진 모의평가는'맹탕 수능'을 이미 예고했다. 주요 영역에서 1등급이 쏟아졌다. 다음달에 또 한 차례 모의수능이 기다리고 있지만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교육부로서는 지난해 수능이 악몽이었을 법 하다. EBS 수능 강의와 교재에서 70%를 직접적으로 연계해 쉽게 내겠다고 약속해놓고도 결과는 정반대였으니 거짓말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고, 이걸 올해에 만회하겠다는 욕심에 내놓은 전략이 '진짜 쉬운 수능'이다. 교육부 장관은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1%가 되게 하겠다고 아예 선언해 버렸다.

이쯤 되면 수능은 SKY를 위시한 주요 대학 입장에선 불량품 취급을 당할 소지가 크다. 외형적으로는 최대 전형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사정(査定)을 해야 하는 대학들에겐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 지원자들 성적이 비슷해 변별할 재간이 없는 전형 요소를 어느 대학에서 믿고 활용하겠는가.

수능의 신뢰회복이 핵심 과제

지난해 입시부터 화두가 됐던 쉬운 수능도 따지고보면 사교육 때려잡기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교육당국 스스로도 놀란 어려운 수능이 되면서 정책 불신이 가중됐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물 수능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수험생들에게 수능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대학 문턱을 넘어서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다. 좋든 싫든, 교육부가 문제를 쉽게 내든 어렵게 내든 수능은 치러야 한다. 이런 수험생들이 무더운 여름날 EBS 교재만 달달 외면서 대입 준비 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고욕이다. 수능이 EBS 수능 교재 암기시험이 되는 것은 정말 코미디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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