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중소기업과 사업영역 마찰을 빚었던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분야에서 아예 철수를 결정한 것. 계열사인 MRO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IMK) 지분도 다 팔기로 했다. 사업성이 아닌 사회적 여론 때문이긴 하지만, 대기업이 계열사를 매각하고 사업철수를 결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MRO를 갖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은 삼성을 따라가야 할지 말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MRO 뭐가 문제였나
사실 IMK는 꽤 괜찮은 회사다. 지난해 매출 1조5,000억원에 390억원의 이익을 냈다.
게다가 MRO는 대기업으로선 꼭 필요한 사업이다. 복사용지부터 청소도구까지 수많은 소모성 용품들을 각 계열사가 따로 구입할 경우 인력과 비용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실현을 위해서도 MRO업체는 필요하다는 게 그 동안 대기업의 입장이었다.
문제는 '자가번식'이었다. 일단 회사는 만들어지면 수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업영역을 넓히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대기업 MRO업체들은 애초 계열사 용품공급을 위해 설립됐지만, 점차 대상을 협력업체에서 일반시장까지 확대했다. 그러다 보니 중소업체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됐다. IMK 역시 1만1,000여개 업체로부터 무려 40만개의 품목을 공급받는 거대기업이 됐다.
MRO 문제가 불거지자 삼성은 지난 5월 IMK의 사업영역을 삼성그룹 계열사 및 1차 협력사로 한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내 1위 대기업에 걸맞게 좀 더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그룹 내에서 제기됐고, 결국 완전매각 결정을 내리게 됐다. 여기엔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침 등 정부의 강경자세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은 IMK 매각을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IMK의 현 시가총액(1일 종가 기준 9,400억원)을 감안할 때 삼성의 9개 계열사가 보유한 IMK 지분 58.7%를 사려면 5,000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한데, 이 정도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3,4개 이상의 중소업체가 함께 인수에 참여하거나 중견그룹이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삼성은 필요하다면 일부 지분은 남겨둔다는 방침이다. 삼성은 IMK 매각 후에도 소모성 용품구매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인수업체로선 어떤 형태로든 '삼성과 연결고리'를 두길 희망할 것이기 때문에, 정 원한다면 일정 지분은 계속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지분을 남겨두더라도) 어디까지나 인수자와의 관계 때문이지 경영권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들 전전긍긍
삼성의 결정은 다른 재벌그룹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현재 ▦LG는 서브원 ▦SK는 MRO코리아 ▦포스코는 엔투비 등 대부분 대그룹들이 MRO계열사를 갖고 있는데, 자연히 세간의 여론은 "다른 그룹들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LG측은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대로 그 방향에 맞출 것"이라며 "지금 당장 매각 여부를 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SK도 현재로선 매각계획이 없다. SK 관계자는 "MRO코리아는 다른 그룹과 달리 원래부터 계열사 자재공급만 하기 때문에 연 매출이 1,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중소업체들이 SK 여러 계열사에 납품할 수 있는 통로역할을 하기 때문에 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엔투비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0.43%에 불과하다"며 "이익을 보기 위해 운영하는게 아니라 계열사 구매부서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기 위한 비용 절감 차원이어서 계속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 압력의 수위가 계속 높아진다면 이들 대기업도 MRO계열사를 계속 둬야 할지 여부에 대해 근본적 검토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