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엔 지역아동센터도 문 닫고… "밥 먹을 곳이 없어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진우(10ㆍ가명)는 주말이 싫다. 주중에는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해결하지만 주말엔 밥 먹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진우는 아버지가 주는 일주일 용돈 1만원을 아끼고 아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한 끼에 3,000원, 주말 이틀 동안은 세끼 이상 먹기 힘들다.
5년 전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생활하고, 진우는 이복형(21), 형(11)과 단칸 월세방에서 지내며 사실상 방치 상태다. 하지만 아버지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다. 진우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부모들의 경제적 빈곤에 맞춰 복지 수급자를 선별하다 보니 정작 부모와 떨어져 사는 상당수 아이들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궁핍해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복지 사각지대 아동 100만 시대
시장소득(정부지원 제외)이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가정에서 살아가는 절대적 빈곤아동(만18세 미만) 비율은 2009년 9.6%(약 100만명 추산)로 2000년대 초 이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6세 이상 18세 미만 중 매일 혼자 있거나 형제자매와 함께 있어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동은 110만7,330명(2008년 12월 기준)으로 추산되며, 민간에서는 이런 아동이 약 18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산층 아이들이 과외며 학원 등 사교육이 벅차다며 불평하는 동안, 100만명이 넘는 빈곤층 아이들은 방치된 채 하루하루 떠돌며 보낸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진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진우처럼 시설 혜택을 받는 아동은 지역아동센터 10만233명,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7,245명, 방과후보육 2만8,929명, 초등학교돌봄교실 10만4,496명(모두 2009년 기준)으로 24만여명에 불과하다. 복지부 기준으로 봐도 90만명에 가까운 아동들이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위기에 몰린 아동센터들
스웨덴은 학령기 아동의 88%가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주로 빈곤층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아동센터가 담당하고 있는 아동 비율은 전체 아동의 1% 가량이며 복지 사각지대 아이들 중에는 약 9%에 불과하다. 5월 현재 전국 지역아동센터는 3,802개소이며, 이용 아동 중 70%가 빈곤 가정의 아동이다.
이처럼 보호 대상에 비해 절대 부족 상태인 지역아동센터마저 예산 부족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곳곳에서 "내년에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급식이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던 급식비가 2005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서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급식비 지원이 천차만별이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 등 부자 자치단체의 지역아동센터는 아동 1인당 4,500원의 급식비를 지원받지만, 지방의 210개 센터(5월 기준)는 급식비를 전혀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전남 목포시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이미경씨는 "센터의 최우선 사업이 급식인데 지자체 지원금은 아동 1명당 간식비로 받는 1,000원이 전부"라며 "아동 복지에도 지역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비 역시 턱없이 모자란다. 복지부는 아동 30인 미만 센터에 월 350만원씩을 지원하는데 이중 75%는 교사 2명 인건비, 나머지 25%는 프로그램 운영비로 쓰도록 하고 있어 교사들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박봉을 받고 있다. 임대료가 지원되지 않아 최근 전세값 급등에 고심하는 곳도 많다.
사정은 이렇지만 전남 목포 지역아동센터 '너랑나랑'의 경우 지난해 12월 49명 모집에 112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2.3대1을 기록하는 등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로 몰리고 있다.
지역 보육담당자들은 급식만은 중앙정부에서 맡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인천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조선애씨는 "지역아동센터는 총체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곳인 만큼 급식을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고, 센터에 다니지 않는 결식 아동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한 복지망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꿈마저 작아지는 아이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조손(祖孫)가정 아이들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중학생은 53.7%, 고등학생은 54.2%만이 졸업 후 상급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절반 가량은 가정 형편 문제로 '학교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학력차별이 공고한 우리나라 실정을 생각하면 조손가정 아이들의 많은 경우가 미래에도 빈곤층으로 뒤쳐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지역아동센터와 통합한다는 명목으로 올해부터 저소득층 청소년공부방에 대한 정부 지원을 없애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아동센터의 경우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청소년들의 학습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하고 있다. 이향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부설 한국아동정책연구소 소장은 "빈곤 아동들이 이대로 방치되면 빈곤의 대물림으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불안정 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이름·소관 부처만 다른 '올망졸망 복지'
'지역아동센터', '방과후 아카데미', '초등돌봄교실'
저소득층 아동을 지원해 주는 이 세가지 사업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하다. 지역아동센터는 18세 미만의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학습지도ㆍ급식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방과후 아카데미도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차상위계층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자녀들의 보충수업, 체험활동 등 학교 밖 학습을 돕는 곳이다. 초등돌봄교실도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가정 자녀의 방과후 교육, 숙제 지도를 맡는다.
비슷비슷한 이 세 사업의 차이점은 소관 부처다. 지역아동센터는 보건복지부, 방과후 아카데미는 여성가족부, 초등돌봄교실은 교육과학기술부다. 현재 우리나라 아동ㆍ청소년 정책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18세 미만의 아동은 복지부가, 만 8세~24세 미만인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부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아동ㆍ청소년)은 교과부가 각각 지원 사업을 맡고 있어 3개 부 간부들 조차도 담당자가 아니면 자기 부 소관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원 조직은 이렇게 복잡하고 크지만 우리나라 아동ㆍ청소년 복지 예산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200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아동ㆍ가족복지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458%로, 평균 3% 수준인 북유럽국가들에 비해 6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부족한 돈을 여러 부처가 분산ㆍ중복 집행하다 보니 현장의 구멍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서울 노원구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저소득층이나 차상위계층 가정 자녀 중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정부의 방과후 교실 수업 수준은 부족할 경우가 많다"며 "뛰어난 아이들을 지원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개인적으로 민간 학원에 부탁해 학원비를 면제받고 다니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개인적 차원의 지원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난 때문에 아까운 재능을 못 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복지부 전체 예산(33조원)중에서도 아동복지 예산은 0.5%(1,763억원) 밖에 안된다"며 "예산 규모를 늘리는 것도 시급하지만 당장 적으나마 있는 돈이라도 제대로 쓰려면 아동ㆍ청소년 업무를 총괄할 통합 부서나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