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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23> 1978년 여름, 내가 마지막 본 신상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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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23> 1978년 여름, 내가 마지막 본 신상옥 감독

입력
2011.08.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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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7월. 그토록 승승장구 하던 신필름이 당국의 허가취소로 폐쇄된 후 신상옥 감독이 돌연 홍콩으로 나를 찾아왔다.

"자네 소식은 들었어. 고생이 많겠다. 웬일이야?" "영화사가 허가 취소됐고 (최)은희가 이북으로 갔으니 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갈 곳도 없고…… 란란쇼한테 얘기를 해서 그 쪽에서 감독을 하게끔 부탁 좀 해다오."

"그렇지 않아도 자네 소식을 듣고 란란쇼한테 자네 얘기를 했지. '신 감독이 고생을 하고 있을 터이니 쇼브라더스에서 감독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야." "그랬더니?" "자네 란란쇼를 잘 알잖아. 그는 장사꾼이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야." "그건 그렇고 (여권을 내놓으면서) 여권 유효 기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자네 총영사관에 아는 영사들 많지? 연장을 좀 해다 줬으면 좋겠다." "그래 내가 부탁해보지. 마침 간첩 이수근이를 잡은 조 대령이 나하고 중학교 동창인데 총영사관에 와있어. 내가 부탁 해볼게."

그는 총영사관에 가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나는 신감독의 여권을 가지고 총영사관의 조대령을 만났다. "이 여권 좀 연장해 줘라. 신 감독 여권 유효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그러는데." 조대령은 긴장을 하면서 "뭐? 신상옥이가 여기 와있어?"하며 되물었다. "그래 지금 금방 만나고 오는 길이야."

조대령이 내 말을 끊으며 "지금 본국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신상옥이를 어떻게든지 한국으로 오게끔 만들라고 지시가 왔다. 그러니까 넌 여기서 빠져"라고 말했다. "이봐! 조대령, 친구 사이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줘야 되는 거 아냐." 부탁해 봤지만 그는 단호했다. "본국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절대로 안 돼! 연장을 안 해주면 지가 본국으로 가야 되니까. 지금 상황이 그러니 자넨 나서지 마."

어쩔 수 없이 여권을 가지고 가서 신 감독에게 여권 유효 기간 연장을 안 해주는 사유를 말해주며 귀국을 권유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사과해. 그리고 기회를 한 번 달라고 애원해봐. 몇 달 고생하면 기회가 올 것 아냐? 군사정권 실권자에게 맞서봐야 자네가 상처를 받지. 승산 없는 싸움은 안 해야지 자네와 신필름을 키워준 사람들이잖아. 안양촬영소까지 줘가면서 말이야. 그들은 자네보고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랬더니 "나 못 간다! 안 갈 거야!"라며 절대 돌아가지 않을 뜻을 비쳤다.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그들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안 가면 어떻게 할 건데? 자네 무일푼이잖아." "은희한테 갈 거야."

"뭐? 지금 뭐라고 했지? 이북으로 간다고? 자네 끔직한 소리하고 있네. 자네 화가 나서 하는 소리로 나는 듣겠어. 자네 성격을 내가 잘 아는데 자네같이 자유분방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사는 자가 어떻게 그 체제 하에서 견딜 거야. 나 자네 심정 잘 알아. 지금 한 말 속이 상해서 한 것으로 듣겠어." 그리고 우리 둘은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고 신문을 통해 신 감독이 이북으로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나는 신 감독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는 이북에서 적응하며 감독을 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의 속을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 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8 년 후인 86년. 신상옥답게 그는 맨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북에서 견뎌내지 못하고 탈출한 신 감독은 그 무서운 북한의 김정일 돈으로 영화를 제작 한다는 명목으로 250만 달러 가량을 챙겨 들고 탈출해 왔다. 그는 가히 봉이 김선달을 능가하는 비상한 재간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는 왜 돌아왔을까. 78년 당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그 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월북했을 수도 있겠지만, 막상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자신의 뜻을 펴기는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 감독은 그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진해 왔는데 막상 북한에서는 군사정권보다 더욱 운신의 폭이 좁았을 터이고 결국 다시 탈북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탈북 과정에서 신 감독은 한국으로 바로 오지 못했다. 미국 정부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미국 정부에는 신변보호에 대한 대가로 김정일이나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는 때를 기다렸다. 군사 정권 하에 있던 한국으로 들어오면 어려움을 겪으리라 예상했던 것 같다. 신 감독은 미국 시민권을 확보 한 후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폈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나름대로 안전한 방책을 세운 것이다.

신 감독과 최은희 탈북에 대해 떠들던 언론도 잠잠해진 어느 날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플라悶【?신 감독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신 감독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옛날 같으면 몇 시간씩 장황하게 이야기하며 반가움을 표현할 텐데 바쁘다면서 신 감독은 슬쩍 피해버렸다. 아마도 내가 그에 대해 이런저런 그간의 사정을 물어보면 난처한 대답을 해야 할 터이니 피한 것이리라. 혹은 그에게 나는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탈북 이후 신상옥과 최은희의 나에 대한 태도를 보면 내가 가장 껄끄러웠던 것 같다. 그들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제 더 이상 홍콩에서처럼 날 찾지 않았다.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만나도 회피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나는 홍콩에서 마지막 본 신 감독과의 대화를 지금 이 순간까지 함구하고 살아왔었다. 우리 정부는 84년 8월 신 감독 부부가 '북한에 의해 강제 납북'된 것으로 공식 발표했었기 때문이다. 당국의 발표를 뒤집으면서까지 목소리를 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극히 제한적인 지인들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사실관계를 밝히기를 적극적으로 권해왔다. 그러나 난 늘 망설이며 별로 내키지 않아했었다.

그러나 이제 회고록 형태의 글을 마주대하면서 더 이상의 함구는 내 자신을 속이고 역사를 기만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북한으로 가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신상옥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신상옥 최은희 납북사건이 언론에 다시 떠오르는 것을 목도하면서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의 일부분을 얘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다시 기사화 된 신상옥 최은희 납북사건은 다시 한 번 내게 만감이 교차하게 한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5월 17일 인터넷 판에서 미국 뉴욕에서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체포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사건을 계기로 국제적인 권력남용 사례 10건을 예로 들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행태를 일곱 번째로 소개했다. 타임은 "김정일이 저지른 여러 실책 중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권력을 남용해 강제로 일부 여성들을 첩으로 삼은 것"이라며 "특히 여성들을 납치하기 위해 남한에 특공대를 보내고, 영화배우까지 납치했다"며 최은희 납치사건을 상기시켰다.

당시의 여러 정황 상 신 감독 부부의 일은 미제사건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이념이 다른 두 정부가 관련된 예민한 시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들쑥날쑥 종잡을 수 없어하는 언론의 부화뇌동이 마음에 걸려왔었다. 어찌 보면 신 감독의 마지막 며칠은 나만 알고 있는 역사일 듯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신 감독과의 독대 후 그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 등등 이런저런 민감한 문제들은 다시 일상 속에 묻어 둔 채 다시 영화촬영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홍콩 총영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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