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의 성월(聖月) 라마단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라마단을 하루 앞둔 7월 31일 4개월 넘게 반정부 시위가 이어진 시리아에서 최악의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1일 "시리아군이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총격으로 진압, 하마에서만 100명이 숨지는 등 전국적으로 136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라미 압델 라흐만 시리아인권관측소 대표는 "사망자 규모만 보면 3월15일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악의 날로 기록될 만하다"고 말했다.
이슬람력의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달. 무슬림은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 봉사 등을 통해 절제와 평화의 미덕을 실천한다. 국가간 전쟁이나 종족 분쟁 등도 라마단 기간에는 일시 중단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올해 민주화 혁명을 목전에 둔 시리아에서는 라마단의 신성성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영국 BBC방송은 "시리아 정부와 시위대 모두 라마단 기간에 군중 동원이 쉽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 유혈 충돌은 더욱 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마에서의 무력 진압은 대규모 집회가 원인이었다. 지난달 29일 50만명이 운집한 무슬림 집회가 금세 '정권 타도'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로 돌변하자, 정부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현지 민주화단체 시리아혁명2011은 "매일 저녁기도가 끝난 뒤 피의 보복을 위해 다시 모이자"고 웹사이트에 공지해 라마단 기간에도 시위를 강행할 방침을 내비쳤다.
이날 시위는 1982년 3만여명이 숨진 '하마의 비극'을 연상케 한다. 바샤르 알아사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당시 대통령은 그 해 2월 전투기 등을 동원, 수니파 무슬림형제단의 근거지인 하마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참상의 기억이 남아있는 하마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난 4월말에야 첫 시위가 일어났고, 바샤르 대통령도 가급적 하마에 대한 탄압은 자제해 왔다. 그러나 시위대가 시리아 최대 도시인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서 인구 80만의 하마가 민주화 혁명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아사드 정권을 규탄하고 나섰지만, 좀처럼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시리아 정부의 민간인 탄압 중단을 촉구하고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 하지만 독일, 이탈리아가 소집을 요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는 유엔의 시리아 사태 개입을 꺼려하는 러시아, 중국의 반대에 밀려 또다시 반쪽 논의에 그칠 공산이 크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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