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김하늘)는 교통사고로 인생의 많은 것을 잃는다. 같은 보육원 출신으로 친동생 같이 여기던 동현이 세상을 떠나고, 자신은 시각장애인이 된다. 춤 버릇을 고치겠다며 동현의 손에 수갑을 채운 일은 두고두고 삶의 상처로 남는다. 동현은 사고 차량에서 탈출할 수 없어 목숨을 잃고, 무분별한 수갑 사용이 문제가 되어 수아의 경찰대 복학도 물거품이 된다.
희망을 잃고 안내견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수아에게 어느 날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자신이 탄 택시 운전사의 뺑소니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경찰은 청각과 후각에 의지한 수아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불량 청소년 기섭(유승호)이 수아가 탄 차는 택시가 아닌 수입차라는 목격담을 진술하자 사건은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 연쇄 살인범인 운전사는 상반된 두 목격자 수아와 기섭의 목숨을 동시에 노린다.
'블라인드'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세심한 연출력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영화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 수아, 자신의 진술을 믿지 않으려는 완고한 기성세대에 불만을 품는 기섭의 입장을 교차시키며 제법 촘촘한 서스펜스의 그물을 직조해 간다. 동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아와 안내견의 교감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111분 동안 심장을 움켜쥐고, 마음을 적시려는 감성 스릴러라고 할까.
스크린에 돋을새김 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수아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시각장애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공포스러운 세상의 모습, 수아를 지키려는 안내견의 사투 등이 인상적이다. "진심으로 사건을 대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성실한 형사 희봉(조희봉)은 사투리 대사로 넉넉한 웃음을 전한다.
지나치게 설명조인 전개는 눈에 거슬린다. 특히 후반부 보육원에서 펼쳐지는 살인마와 수아의 대결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친절해서 오히려 불만스럽다. 표현을 절제할 필요가 느껴진다. 맥거핀 효과(특정 인물이나 물건을 사건 해결의 주요 요소인 양 보여주는 속임수)를 남용하는 것도 몰입을 방해한다. 관객의 머리 속에 상상의 여백을 남겨주는 게 더 영리한 연출법 아닐까.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추격자'(2008) 이후 쏟아져 나온 충무로산 스릴러 중엔 완성도면에서 상위권에 해당하는 영화다. 공포영화 '아랑'(2006)으로 데뷔한 안상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11일 개봉, 청소년관람 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