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게보르크 바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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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술통들이 굴러가 일요일의 파도를 맞이하고, 우리는 향유 바른 발꿈치를 들고서 해안으로 가 포도송이를 씻고, 그 수확들을 으깨어서 포도주를 만들리라. 내일 아침 해안에서는.
그대가 부활하고 내가 부활할 때면 형리가 문에 걸리어 있고, 망치가 바닷 속으로 가라앉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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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누구나, 여름내 모아 두었던 조가비를 담은 모자를 바닷 속에 던져넣고 머리칼을 날리며 떠나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차렸던 식탁을 바닷 속에 밀어넣고, 술잔 속에 남은 포도주 찌꺼기도 바닷 속에 쏟아부어야 한다. 자기의 빵을 물고기들에게 주고 한 방울 피를 바닷물에 섞어야 한다. 자기의 칼을 고이 파도에 실어보내고, 구두를 바다 밑으로 침몰시켜야 한다. 심장과 닻과 십자가를. 그리고는 머리칼을 날리며 떠나가야 하는 것이다! 훗날 그는 다시 돌아오리라. 언제냐고? 묻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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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게보르크 바하만은 대학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연구했어요. 그래서인지 그녀의 시 속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스며있어요. 한 여름 어느 날 문득, 더위와 노동에 지친 우리는 섬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그동안 죽어 있다가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들 만큼 그곳은 공기도 물도 빛도 신선합니다. 이 싱그러움의 한 가운데에서 시가 끝나면 참 좋을텐데…. 누구도 그 해변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지요. 행복한 여름의 잔재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차렸던 식탁을 걷고, 자신의 빵을 물고기에게 나누어주고, 포도주도 피도 바닷물에 섞어야 해요. 그런데 시를 읽다 보면 우리의 생이 여름날의 휴가와 같노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을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고 살과 피를 자연에 뿌리며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테니까요. 그러니 너무 피로해하지 말아요. 지금 우린 사랑하고 싸우고 달리면서 생의 가장 아름답고 뜨거운 해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겁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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