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계에서는 학문간 융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은 심리학자인 다니엘 캐너만 교수가 수상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심리학자가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기존 고전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인 이성적이고 합리적 인간에 대한 전제를 무너뜨리고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가 심리학이나 경제학만을 공부했다면, 이루기 어려운 업적이었다.
비현실적인 용기 필요한 융합연구
그러나 실제로 융합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의 정재승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융합연구에 뛰어들려면 비현실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모두들 구호처럼 융합을 떠들지만, 실제적으로는 기존 학과에서 융합 연구자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고, 학생들도 취업을 두려워하는 등 어려움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정말 인류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위대한 연구는 융합분야에서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암을 제대로 고치려면, 한 가지 학문 영역의 접근 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21세기 최대의 정복과제인 뇌과학 역시 대표적인 융합학문 영역이다.
'노벨상을 타려면 같은 전공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라.' 노벨상 수상자가 전해주는 학문융합의 중요성이다. 이질적인 것들을 묶어내는 융합의 중요성은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업의 방식 중에서 매우 효과적인 것이 '협동학습법'이다. 협동학습법은 지난 수 십년간 수 백개의 주요 논문들을 통해 학업적 측면과 사회성 측면 등에서 효과가 입증됐다. 어린아이들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활용 가능하다. 그런데 협동학습의 효과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이질적으로 소집단 구성하기'다. 즉 흔히 말하는 조별활동을 할 때에, 한 조의 4~6명을 학업성적, 성별, 사회문화적 배경 등을 되도록 이질적으로 섞어서 구성해 주어야만 효과적이다. 이를테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끼리만 모이면, 매우 성과가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과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섞일 때에 더욱 효과가 높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동료들에게서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들을 기회가 생기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해도가 더욱 깊어진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수도인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탄생한 곳이다. 단테,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다빈치, 길릴레이 등 셀 수 없는 천재 예술가와 과학자가 피렌체에서 태어나 활동했다. 우리가 이들을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이토록 많은 천재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과연 신은 피렌체에만 집중해서 축복을 내려준 것일까?
학문의 경계 허무는 시대 돼야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와 종교를 연구하는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와 등 자신의 저서에서 350년 동안 피렌체의 문화와 경제를 주도한 메디치 가문이 생각의 융합을 앞장서 이끌었기에 르네상스 시대가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1433년 피렌체의 통치자 격인 제1시민이 된 메디치 가문의 수장 코시모는 11세기 이래로 서로 원수처럼 지내온 동방의 비잔틴교회와 서방의 가톨릭교회 간의 종교회의를 피렌체로 유치했다. 막대한 회의 비용도 모두 부담했다. 그가 유치한 피렌체의 종교회의에서 중세 유럽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동방 비잔틴 제국에서만 통했던 플라톤주의가 만나 동서 사상의 빅뱅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이러한 사건들을 기반으로, 비로소 1,000년 암흑의 중세를 지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피렌체의 메디치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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