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기관 중 ‘각종 고효율 태양전지 기술’ 연구를 하는 곳만 일곱 군데에 이르는 등 국책 연구소들의 중복ㆍ유사 연구개발(R&D)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출연연구원들을 하나의 법인으로 묶는 연구원 통합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는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시스템을 통해 세부 과제명을 기준으로 정부 연구기관 연구사례를 조사한 결과, 태양에너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6개 분야에서 11~23개 정부 기관이 유사ㆍ중복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일 밝혔다. 조사 대상 정부 기관에는 각 부처별 직속연구기관과 정부출연연구원, 국ㆍ공립 연구소, 카이스트 같은 정부 설립 과학기술원이 포함됐다.
중복 연구가 가장 심한 분야는 태양에너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 23개 기관이 적게는 4,000만원부터 많게는 118억원까지 지원받아 연구 중이다. 이어 신약용 물질(21개 연구기관) 차세대 디스플레이(19개) 로봇(17개) 차세대 자동차(16개) 풍력에너지(11개) 등에서 중복 연구가 많았다.
중복ㆍ유사 연구는 올해 초 R&D 조정ㆍ배분을 위해 국과위가 출범하기 전까지 정부 부처들이 ‘세 불리기’ 식으로 인기 연구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든 결과라는 지적이다. 수년 전만 해도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초 연구, 지식경제부는 상용화 연구 등으로 부처별 역할이 나눠져 있었지만 점점 영역 침범이 심해지면서 연구 영역의 교집합이 커져왔다.
연구기관들이 정부나 민간의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중심 연구 영역과 동떨어지더라도 돈이 몰리는 분야로 무리하게 연구과제를 확대하는 것도 중복 연구를 부추긴다.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상임대표인 민경찬 연세대 교수는 “국가 연구기관은 위에 있는 교과부, 지경부 등 여러 부처에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내니까 수주해 온 것”이라며 “논의나 조정 없이 연구개발을 진행한 정부 부처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국과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처 R&D 예산 배분 때 중복 연구를 솎아내는 것은 물론 연구기관간 교류를 원활히 하도록 출연연구원 통합을 검토하고 있다. 김차동 국과위 상임위원은 “한 해 4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사용하는 출연연구원들이 지금처럼 각 부처에 속한 채 정보나 인력 교류에 나서지 않으면 중복 연구를 피할 수 없다”며 “하나의 이사회를 두고 단일 법인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연구비 따내기 경쟁을 막기 위해 정부 지원 출연금 비중을 높이고 큰 틀의 연구 목표에 예산을 지원하는 ‘블록 펀딩’ 제도 도입도 추진된다.
김도연 국과위원장은 이 조사 결과를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고, 이 대통령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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