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한민국, 복지의 길을 묻다] <2부> 복지 사각지대 현장 점검 (1) 제도 밖에 방치된 그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복지의 길을 묻다] <2부> 복지 사각지대 현장 점검 (1) 제도 밖에 방치된 그들

입력
2011.07.31 17:32
0 0

■ 병원 6개월 다녀야 수급자 인정된다는데, 병원비는 없고…

정부의 복지사각지대 일제조사에서 발굴된 2만4,000여명 가운데 여전히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한국일보가 전국 10여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이들의 구체적인 사연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제도가 미비하거나 지원 범위가 너무 좁은 데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모(65ㆍ여)씨는 모자가 모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빈곤층이다. 마을 이장이 어렵게 생활하는 이들을 보고 일제조사 때 신고했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아들이 근로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데, 정신질환을 인정받으려면 최소 6개월 이상 병원을 다녀야 한다. 하지만 한씨네는 진득하게 병원을 다닐 여건이 되지 못한다. 직산읍사무소 김지영씨는 "근로능력 판정을 못 받으면 최저임금 소득금액을 추정으로 잡게 돼 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2만4,000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서울 강동구에 사는 조모(73ㆍ여)씨의 사례도 비슷한 경우였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들이 병원 다니는 것을 거부해 근로능력 판정을 받지 못해 수급자에서 제외됐다. 부실한 소견서를 함부로 발부 받아 부정수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지난해부터 의사가 '근로능력평가용진단서'를 발급하도록 규정이 엄격해졌지만, 그로 인해 또 다시 복지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 한씨는 7월에 만65세가 돼서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달 최대 9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천안시 서북구의 경우, 발굴 52건 중 22건만 법적으로 지원이 가능했고, 한씨 사례를 포함해 나머지는 30건은 민간 후원통로를 찾아야 했다. 민간후원은 대개 일시적인 혜택에 불과하다. 한씨도 민간 지원단체에서 쌀과 일부 생필품을 받은 정도였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광주시 동구에 사는 염모(75ㆍ여)씨는 2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자녀들을 양육했다. 혼자 방 한 칸에서 생활하는 그는 건강악화로 생계가 막막하다. 지자체는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일제발굴 사례에 포함했으나, 사위의 소득이 기준을 초과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실질적으로 전혀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구제하기가 어렵다. 광주 동구청 박종오 계장은 "완전히 가족관계 단절이라고 자식이 인정하면 생활보장심의위원회에서 수급자로 인정한다"며 "그러나 (염씨처럼) 자녀와 연락을 하는 상황에서 부양기피가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자녀가 '나는 안 도와준다'며 부양기피를 인정해야 부모가 수급자가 될 수 있고, 법적으로 정부가 자녀에게 부양비를 추후 징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녀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 부양기피를 인정하지 않는다. 박 계장은 "부양기피가 인정돼 부양비가 강제 징수된 경우는 전국적으로 5건 이하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관계 단절 증명도 쉽지 않다. 충남 아산시청 조사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에게 사실 확인을 위한 우편물을 보내는데, 태반이 답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확보하는 전화번호도 틀리기 일쑤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의 증명이 없다면, 이웃들이 상황을 증명하는 '인우보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직접적인 증명이 없으면 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광주에 사는 김모(46ㆍ여)씨는 부부가 차량으로 야채 노점상을 하며 생활하던 중 올해 초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씨는 남편 간호 때문에 돈을 벌 수 없고, 아들은 군입대를 해서 생계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런데도 수혜 기한이 최대 6개월로 한정돼 있는 긴급복지지원금마저 이미 지원받은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지급받지 못했다. 이번에 발굴된 사례 중 379건은 이미 동일사유로 지원이 이루어져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또 137만원짜리 승용차가 전액 월소득으로 환산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과거 '자가용 모는 기초수급자'가 문제가 된 이후 자동차 차령이 10년 미만이거나 1,600cc 초과인 경우 차값을 100% 월소득으로 환산하게 됐다"고 말했다. 생계형 차량은 4.17%만 일반재산으로 환산되지만, 차량 기준도 복지 사각지대 확대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박종오 계장은 "자동차의 경우 소득이 아니라 일반재산으로 환산하든가, 유지비만 소득에 산정하면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찔끔찔끔 지원이 복지사각 키운다

현장 복지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없이는 복지사각지대 일제조사와 같은 이벤트는 큰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향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부설 한국아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이번에 생색내며 찾은 2만4,000여명을 구제한다 해도 곧 이런 사람들이 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진짜 사각지대에 대한 근본대책 없이는 이런 일이 되풀이될 뿐"이라고 말했다.

충북 진천군청 주민복지과 김영국씨는 "실제로 가서 보면 어르신들 생활이 어렵고 부양도 못 받는데 자녀들 때문에 부양의무자 조건에 다 걸린다"며 "부양의무자 조건을 완화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청 박종오 계장도 "정부가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현재보다 42% 정도 올리겠다고 하지만, 최소 100%는 올려야 도움을 못 받는 분들이 실질적으로 생계비를 보장받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청 사회복지과 유양순 계장은 "(현재 법령으로는) 발굴해도 제도권으로 다 끌어들일 수 없다"며 "자꾸 고령화되고 혼자 사는 장애인 가구도 늘어가는데 이런 부분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 외에는 제대로 된 지원이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한부모가정(조손가정 포함) 지원은 양육비 월 5만원에 고교 학비면제 정도이고, 중증 장애인연금은 월 9만1,200~15만1,200원씩을 준다. 기초노령연금도 월 2만~9만1,200원이다. 경증 장애인에게 주는 장애수당은 월 2~3만원, 장애아동수당도 월 2~10만원에 불과하다. 이것도 조건이 까다롭다. 한부모 가정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내, 중증 장애인연금도 부부합산 소득인정액이 월 84만8,000원 이하, 장애수당ㆍ장애아동수당은 최저생계비의 120% 이내여야 한다.

이렇게 찔끔찔끔 지원하는 제도가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전 부처에 걸쳐 있다. 총리실 자료에 따르면 비슷한 사업이어서 서로 중복지원이 금지된 사업이 150여쌍에 이른다. 그러나 전산망으로 통합된 것은 일부여서, 현장 복지 공무원이 수작업으로 가려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지 사업 대상자 선정기준도 무려 41개 종류에 이른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복지제도는 큰 틀에서의 제도의 도입과 설계가 없고 각 부처마다 모자이크 식으로 찔끔찔끔 만들어져 중복과 누락이 심하다"며 "학계에서는 '올망졸망 복지(제도는 많지만 푼돈만 지원한다는 뜻)'라고 부를 정도"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개인적으로 홈리스(노숙자)를 전공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홈리스만큼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우리 국민은 근면하다"며 "정부가 우리는 앓아본 적도 없는 '복지병'에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복지 패러다임이 전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