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제든지 한진중공업 노동자처럼 삶터, 일터에서 밀려날 수 있겠죠. 그 위기감, 연대의식,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우리를 희망버스에 오르게 만들었죠. 노사와 부산 시민들이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찾고 싶었어요."(40대 희망버스 탑승자)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정리해고 조치에 맞서 200일 넘게 한진중 부산 영도조선소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 중인 김진숙 위원. 김 위원과 해고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30일 부산을 찾은 3차 희망버스 탑승객들의 직업은 회사원, 약사, 시인, 자영업자, 학생 등 각양각색이었다. 연령대도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희망버스 승객의 탑승 동기는 무엇일까. 1박2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은 3차 희망버스에 동승해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건강식품 판매상 오동환(47)씨는 젊은 시절 16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속칭 '노가다'로 일했다. 이후 건설노조 등을 거쳐 지금은 자영업자로 변신했지만 한진중 노동자 해고 문제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일할 때나 지금이나 작업 현장의 열악한 상황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저와 다르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 희망버스에 탄 겁니다."
인간 김진숙에 대한 연민의 정을 동기로 꼽은 사람도 있었다. 서울 강북구에서 온 약사 남명희(50)씨는 김씨의 자전적 에세이 '소금꽃 나무'를 읽고 부산행을 결심했다. "올해 52세로 저와 동년배인 그가 30여 년 동안 노동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모습을 보고 감동과 부채의식을 떨칠 수 없었어요. 김 위원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부산에 가게 됐어요."
시집도 한 권 냈다는 15년차 시인 강란숙(54)씨는 2차(9일)에 이어 두 번이나 희망버스를 탔다. 그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김 위원이 '나는 지금까지 여자인 줄 모르고 살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눈물을 흘렸다"며 "김 위원을 위해 '그대 이름은 여자다'라는 제목의 헌정시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희망버스 탑승자는 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전북 무주시에 있는 대안학교 푸른꿈고등학교 3학년생 권우현(19)군은 "한진중 사태 관련 보도를 보며 문제의식을 느꼈고, 도대체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산행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건설자재생산업체 사장을 지냈다는 81세의 권모씨는 "경영자들은 노동자를 아끼고, 이윤도 충분하게 나눠야 하는 것 아닌가. 경영자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던가 되돌아보기 위해 희망버스에 올랐다"고 밝혔다.
30일 서울을 출발, 7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한 뒤 31일 오전까지 영도 일대에서 밤샘 문화제와 집회를 평화적으로 마친 3차 희망버스 탑승객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휴가 기간에 시간을 내 희망버스 행사에 참가했다는 회사원 김우영(33)씨는 "노사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사측이 압박과 책임 회피 일변도에서 벗어나,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넘기지 않고 지역경제와 노동자, 회사를 함께 살릴 수 있는 해법을 내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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