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10시 경기 용인시 유림동의 한 반지하주택. 27일 폭우로 침수돼 빗물이 무릎까지 찬 이 지하주택에서 양수기로 물을 빼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복구 작업에 참여한 유림동 적십자봉사회 회원 10여명 중에 바닥을 청소하느라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중년 사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침수로 엉망이 된 욕실을 닦아내고, 못쓰게 된 가구를 옮기느라 얼굴에 땀이 마를 틈이 없었다. 자기 몸을 온전히 가누기도 힘들어 보였지만 누구보다도 열성적이었다. 지체장애 1급 자원봉사자 박헌태(48)씨다. 손이 떨려서 작업용 고무장갑을 끼는 데만 1분이 넘게 걸리고 걸음이 불편해 쓰레기 자루를 옮기는 일이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힘들지만 박씨는 어눌한 말투로 "힘들어도 해야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돕는 일인데"라며 그저 웃었다.
유림적십자봉사회가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한다는 공지를 띄우자 제일 먼저 참여의사를 밝힌 사람이 박씨였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독거노인 무료급식 봉사나 취약계층이 사는 집에 도배나 장판교체를 해주는 '사랑의 집 고쳐주기'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가 친구의 소개로 적십자봉사회에 가입한 2008년 12월부터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만 1,000시간이 넘는다. 지난해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회가 주는 표창장도 받았다.
유림적십자봉사회 이강수 회장(54)은 "헌태씨는 봉사 일정이 생기면 구체적인 내용까지 물을 정도로 꼼꼼하고 열심이다"며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열쇠를 헌태씨에게 맡긴 것도 이런 적극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체장애를 갖고 태어난 박씨는 원래 계란 장사꾼이었다. 일반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오토바이를 몰고 식당가를 돌아다니며 계란 배달을 했다. 지체장애가 있어 손을 떨기는 했지만 성실한 박씨 부자 모습을 높이 산 인근 식당주인들은 단골 고객이 됐다. 1990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2003년에는 어머니마저 심장병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혼자가 된 헌태씨는 실의에 빠졌고, 계란값 폭락에 대형경쟁업체까지 생기면서 30년 가까이 해온 배달 일도 5년 전 그만뒀다. 박씨는 현재 용인시 역북동의 원룸에서 정부보조금 55만원을 받으며 혼자 살고 있다.
유림적십자봉사회 회원인 이종훈(52)씨는 "헌태씨 형편을 잘 아는 회원들이 회비는 안 내도 된다고 말했더니 펄쩍펄쩍 뛰면서 봉사를 제대로 하려면 회비도 내야 한다며 한 달에 2만원씩 꼬박꼬박 낸다"면서 "우리같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깨어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독거노인 무료급식이나 장애인 도우미 등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토요일을 뺀 평일에는 대부분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정수입이 있으면 정부보조금 55만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 얼마 전 지인이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월 30만원 벌이가 되는 고물상 일을 소개시켜줬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림적십자봉사회 관계자는 "처음에 낯을 잘 가리고 어두웠던 헌태씨가 봉사활동을 하며 밝아진 것은 사회에서 역할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라며 "그는 우리 봉사회의 선도 모범생"이라고 말했다.
용인=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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