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는 분자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다.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은 1953년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DNA가 꽈배기처럼 생겼다고 밝혔다. 3년 뒤에는 DNA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유전 물질 RNA를 통해 단백질이 합성된다는 중심원리(센트럴 도그마)를 세웠다. 이 중심원리는 수십 년간 분자생물학의 기본공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중심원리가 흔들리고 있다.
DNA에 없던 염기 RNA서 생겨
서울대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 연구진은 7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제네틱스에 "DNA에서 RNA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DNA에 있던 최소 1,800개 이상의 염기가 RNA에선 전혀 다른 염기로 변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한국인 남녀 18명의 DNA와 RNA를 비교분석했다. 이보다 앞선 5월 미국 펜실베니아대 의대 비비안 청 교수팀도 서양인 27명을 분석해 DNA에 없다가 RNA에서 새로 생긴 염기가 1만개 이상 된다고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중심원리는 꽈배기처럼 생긴 DNA가 풀리면 그 중 염기서열 한 가닥을 복사한 RNA가 생기고, 그 RNA의 염기서열에 따라 단백질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DNA에서 RNA가 생기는 과정에 새로운 염기가 나타난다는 건 DNA 염기서열 그대로 RNA가 나오고 단백질이 합성된다는 중심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청 교수는 이 현상을 'RNA와 DNA는 다르다(RNA DNA Difference)'는 뜻으로 'RDD'라 했다. 서울대의대 연구진은 전사염기서열변이(TBM)라 이름 붙였다. 명명은 자신 있게 했지만 사실 두 연구그룹은 중심원리에 어긋나는 연구결과를 두고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서울대의대 김종일 교수는 "올해 초 유전체의학연구소 초청으로 청 교수가 방한했다. 당시 그는 사이언스 논문 심사를 받고 있었는데, 처음 밝혀진 현상이다 보니 논문을 내도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되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우리도 비슷한 연구결과로 곧 논문이 나올 거라고 귀띔하자 안심 하더라"고 말했다.
질병예측 할 때 RNA 분석도 해야
DNA 염기서열을 이루는 염기 30억 개 중에 전사염기서열변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0.004%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우리와 비비안 청 교수가 찾은 전사염기서열변이는 10% 밖에 겹치지 않아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에 대해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원용진 교수는 "DNA에 그려진 설계도와 다르게 만들어지는 RNA 염기가 예상 외로 많다"며 "DNA만으로는 유전자의 영향을 정확히 알기 힘들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게놈(유전자 전체)을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는 방법도 달라질 전망이다. 발병 원인은 크게 유전적ㆍ환경적 원인으로 나뉜다. 이전까진 유전적 원인으론 DNA 손상이나 돌연변이를 꼽았다. 이로 인해 특정 유전자가 잘못돼 암, 당뇨병 같은 질병을 앓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DNA를 분석해 발병확률을 예측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앞으로는 RNA 분석도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DNA에 없던 염기가 RNA에서 새롭게 생기거나, DNA에 있던 염기가 RNA에선 없어지는 게 이번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당뇨병 유발 유전자 7개를 다 가진 사람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은 하나도 갖지 않은 사람보다 겨우 1.1배밖에 높지 않았다"며 "DNA 차이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만큼 향후 질병예측에선 RNA 검사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물학 교과서 바뀔 수도
아직까지 이 현상이 나타나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영준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DNA에 없는 염기가 RNA에 나타나는 현상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일어나는지 아직 모른다. 생명현상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사염기서열변이가 좀 더 폭넓게 연구되고 원인이 밝혀지면 앞으로 수년 후 생물학 교과서가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이런 현상을 반영해 수정 보완된 중심원리가 더욱 정교해지면 고등학교나 대학교 생물학 교과서도 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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