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흥분해 있었던 걸까. 붉게 상기된 얼굴은 서울시향 예술감독실에 밀려드는 노을 때문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사진 찍기보다 더 싫은 게 손 벌리는 일인데, 그걸 하고 다닌다"고 했다. 30분을 넘긴 적이 없다는 정명훈(59) 서울시향 예술감독과의 인터뷰는 어느새 1시간을 훌쩍 넘고 있었다. 8월 9일~27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등을 도는 서울시향의 유럽 순회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서울시향에 대해 품고 있는 기대와 애정을 뚜렷이 드러냈다. "반사교적 성격이라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본성을 벗어나 이제는 기회만 닿으면 "펀드레이징(fund raisimg)"을 한다고 했다. 극적 변화다.
_드뷔시와 라벨을 녹음한 서울시향의 앨범이 지난 15일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나왔는데
"프랑스 음악이 초점이 아니다. 나의 궁극적 관심은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한 시향의 단련과 향상이니까."
_이번 일정에서 왜 음반의 테마인 프랑스만 빠졌나?
"초청 형식이므로 우선 현지의 의도를 존중한다. 프랑스의 8월은 나라 전체가 휴업이어서 연주회란 없다."
_음반에는 만족하나?
"이번 투어 직전 우리가 DG에 제안했는데 연락이 온 거다. 녹음이란 불완전한 부분을 끝까지 반복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매우 중요한 작업인데 우리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거의 원테이크로, 공연이 없는 아침 나절에 눈치 보듯 했다."
_DG란 상징성도 클 텐데?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데 대해) 만족 정도가 아니라 감사한다. 매년 좋아질 거라는 내 말을 그들이 확신했다. 사실 구미쪽 오케스트라에서는 그런 말이 안 나온다. 요즘 그들은 현상 유지가 고작이니까. 실제적으로는 DG가 속해 있는 유니버설뮤직그룹인터내셔널의 부사장 필라바키와 오페라 덕분에 친해진 것이 결정적 계기다. (클래식은) 인적 관계가 특히 중요한 일이다.
_올해는 기록 내기로 작정했나
"DG에서 음반 장기 계약은 아시아 최초다. 세계 최대의 공연 시장인 에든버러 페스티벌 참가는 한국 교향악단 최초이자, 올해 클래식 분야 참가 단체로는 아시아에서 유일하다. 이번 유럽 투어는 서울시향이 겪고 있는 변화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_홍보에서 협찬해준 특정 기업을 앞장세운 게 눈에 띄는데
"우리나라의 수준(국력)이 올라가는 데 발맞춰 기업은 문화에 배려할 때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기업은 계속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 미국의 예술은 전적으로 후원(sponsership)이다.
-기업은 왜 예술에 투자해야 하나?
"제대로 가고 있는 사회의 기업이라면 생활 , 교육, 문화, 예술, 종교의 순서로 투자한다. 기업과 손 잡지 않을 수 없는 이 시대, 예술이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파느냐 하는 것이다. 예술은 직접 판매가 아니라 제품의 고급화와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문화에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긴 안목으로 투자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싸게 팔리는 무대(그는 특정 TV프로를 예로 들었다)로는 안 된다. 문제는 돈이다. 특히 투어 비용!"
_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우리를 당당히 알리는 작업에서 기업은 조건 없이 도와줘야 한다. 아무런 요구도 없이, 뭔가 해준다는 생각 없이. 다행히 서울시향에는 이런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비공개다. 무조건 도와주는 기업의 존재는 우리의 수준을 상징한다."
_서울시향의 형편은?
"단적으로 말하자. 세계적 오케스트라는 악장에게 명품 악기를 빌려준다. 우리는 그런 여유가 안 된다. 동양 최고란 지나친 말이다. 일본의 톱 밑에 겨우 끼어드는 수준이다. DG의 인정을 겨우 받지 않았나."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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