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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태안 기름유출사고 4년, 채 안가신 오염 후유증…그래도 바지락밭서 희망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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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태안 기름유출사고 4년, 채 안가신 오염 후유증…그래도 바지락밭서 희망을 캐다

입력
2011.07.2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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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2,547㎘가 바다에 쏟아지면서 청정해역을 순식간에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다. 그 죽음의 바다는 123만명의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청정 해안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건강 이상과 사고후유증, 지지부진한 배상 절차와 뚝 떨어진 소득, 까다로운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의 배상 규정 탓에 3년 7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하늘만 원망할 수 없다

"검은 기름띠가 해변에 몰려오던 모습을 보고 주민 모두 할말을 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곳 어민들의 소망은 거친 바다에 부대끼며 하루하루 살아야 했던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이충경 어촌계장(40)은 기름유출사고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내비친 소망은 소박한 만큼 절실하게 마음을 울렸다.

이씨는 5년 전 36세 젊은 나이에 어촌계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기름 사고가 발생해 햇수로 4년을 기름사고 보상업무와 어장복구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150가구 300여명의 생계 터전이었던 200㏊의 마을 앞 바다의 굴 양식장이 검은 원유 덩어리로 뒤덮여 철거하는데 만 2년이 걸렸다"며 "그 기간 우리는 어민이 아니었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고 전 이곳 어민들은 봄ㆍ여름에는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가을ㆍ겨울엔 양식장에서 굴을 따 가구당 연 평균 3,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 굴 자루를 들고있어야 할 이들 손은 삽과 곡괭이를 쥐어야 했다. 기름 방제 현장과 희망근로 작업, 공사장에서 닥치는 대로 날품을 팔며 생계를 이어 갔다.

그래도 돈줄은 빠르게 말랐다. 고민 끝에 2008년 말에 기름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의 굴을 가져다 껍질을 까는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가져온 굴의 품질이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해 결국 500만원의 손해를 자신이 떠안았다. 이런 식으로 이씨의 부채는 모두 6,000만원으로 늘었다. 어민들은 소득이 줄고 빚만 늘어 가자 웃고 넘어갈 사소한 시비에도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잦아졌다.

주민들의 항구적인 생계대책은 굴 양식장 복구뿐이었다. 하지만 양식장 복구작업에는 수십억원이 필요한데 IOPC의 피해 보상은 언제 이루어질지 기약이 없다. 이씨는 "어촌 일은 공동작업이 많아 주민간 신뢰가 중요한데,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서로 반목하는 일이 늘어나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어민들은 지난해 바다환경의 변화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냈다. 굴 양식시설을 걷어 낸 갯벌에 바지락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주민들은 바지락을 채취해 어민 1인당 많게는 8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희망을 발견한 어민들은 시설비가 많이 들어가는 굴 밭을 바지락 밭으로 바꾸었다. 올해까지 25㏊ 조성하고 향후 45㏊까지 늘릴 계획이다.

어촌체험장도 조성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이 복구한 바다로 다시 찾아오도록 만든다는 복안이다. 사회적 기업도 만들어 어민과 도시민이 상생 화합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다.

지난달 셋째 딸이 태어난 이씨는 요즘 각오가 남다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이란성 쌍둥이를 둔 그에게 막내 딸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의미와 희망이 됐다. 이씨는 "새로 만든 바지락 양식장과 막내 딸을 바라보면서 가슴속 가득 차있던 화도 많이 가라 앉았다"라고 말했다.

험난한 배상절차와 주민건강 우려

이씨는 "겉으로는 깨끗해 졌지만 방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일부 지역은 여전히 기름냄새가 스며 나온다"며 정부의 지속적인 관리를 요청했다. 지난해 하반기 국토해양부는 태안지역의 해수수질 검사결과 일부 지역의 갯벌에서는 소량의 타르 또는 유막 형태로 기름성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사고 이후 암환자 발생이 크게 늘었다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인근 파도리 주민들은 사고 이후 15명 이상의 주민이 암 진단을 받았다. 의항리에서도 4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암환자 급증이 기름사고와의 연관성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진척이 없는 배상절차다. 국토부와 태안군에 따르면 IOPC펀드에 피해배상 청구현황은 전국에서 2만7,466건, 2조2,183억원에 달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특수한 어업문화가 국제기금의 피해 산정에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어민들은 불만이 크다. 국토해양부는 내년 말까지 배상 청구건수의 80% 수준에 대한 사정이 마무리되도록 서두르겠다는 방침이다.

이씨는 "3년이 지나도록 배상을 못 받았는데 앞으로도 오랜 시일이 걸린다니 답답하다"며 "외국처럼 정부가 미리 배상하고 나중에 국제기금과 정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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